1984년.
우리나라 스포츠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중요한 한 해였습니다. 미국 LA에서 열린 23회 하계 올림픽에서 우리나라는 금메달 6개 은메달 6개 동메달 7개로 종합 10위를 거뒀지요. 당시까지 올림픽 출전 사항 초유의 10위권 진입이라는 믿을 수 없는 실적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그 역사적인 사건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분들 많을 거예요.
당시에는 몰랐지만, 1984년 올림픽은 당시 소련, 북한 등 소위 대부분의 공산주의 국가들이 불참한 반쪽짜리 올림픽이었습니다. 1980년 모스크바 하계 올림픽에서 미국을 포함한 소위 민주주의 진영 국가들이 보이콧한 것에 대한 보복 차원이었지요. 아래의 지도에서 녹색 국가가 참가국, 회색은 불참국이며, 청색은 처녀 출전국입니다.
1984년.
세계 IT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기념비적인 한 해였습니다. 스티브 잡스(Steve Jobs)의 애플 컴퓨터(Apple Computer Inc.)에서 ‘매킨토시(Macintosh)’라는 개인용 컴퓨터를 최초로 출시했습니다. 매킨토시는 그 이전까지 명령어 입력 기반 일변도였던 컴퓨터 시장에 눈이 번쩍 뜨일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GUI, Graphic User Interface)를 최초로 도입한 혁신적인 개인용 컴퓨터였습니다.
이 매킨토시는 IT 역사뿐 아니라, 상업 TV 광고의 역사에도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1984년 미국 Super Bowl 경기 중에 소개된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소설 ‘1984’를 패러디한 TV 광고가 그것이지요. 이 광고는 ‘블래이드 러너(Blade Runner, 1981년 作)’라는 영화사에 또한 기념비적 걸작을 남긴 리들리 스콧(Ridley Scott) 감독의 작품입니다. 광고에서 소설 ‘1984’에서처럼 대형 스크린에 ‘빅 브라더(Big Brother)’를 연상케 하는 사람이 화면 가득 나와 수 많은 군중들을 선동합니다. 이 때, 해머를 든 한 건장한 여성이 스크린을 향해 돌진하고, 경찰들이 뒤따르지요. 마침내 그 여성은 스크린을 향해 해머를 날리고, 대형 스크린은 산산조각 납니다. 경악하는 군중들. 이어 다음과 같은 문구가 화면을 가득 채우지요.
On January 24th,
Apple Computer will introduce
Macintosh.
And you’ll see why 1984
Won’t be like “1984.”
1월 24일,
애플 컴퓨터는 매킨토시를 출시합니다.
그리고, 당신은 왜 1984년이
“1984(조지 오웰의 소설)”와 같지 않을지 알게 될 겁니다.
애플 컴퓨터는 이 매킨토시로 기존의 PC 시장을 독점하던 ‘빅 브라더’였던, IBM社를 향해 의미심장하고도 충격적인 도전장을 공개한 것입니다.
‘1984’는 영국이 낳은 세계적 작가 조지 오웰이 1948년에 쓴 작품입니다. 1948년의 마지막 두 숫자를 거꾸로 썼다는 설이 있지요. 특히, 그는 그는 말년에 아내의 사망에 대한 슬픔을 가슴에 품고 양자인 리처드와 스코틀랜드 지역의 주라(Jura) 섬에서 폐결핵으로 각혈까지 하며 ‘1984’라는 마지막 대작을 남깁니다. 영화 ‘1984’는 존 허트(John Hurt, 윈스턴 스미스 역)와 리처드 버튼(Richard Button, 오브라이언 역) 두 유명 영국 배우가 열연했습니다. 이제 무시무시한 디스토피아의 세계 ‘1984’로 들어가볼까요?
이야기를 제대로 알기 위해 사전 지식이 좀 필요합니다. ‘1984’년에서 그리는 세계는 다음의 지도와 같습니다.
1948년 당시 조지 오웰이 소설에서 그린 36년 후의 세계는 크게 오세아니아(분홍색), 유라시아(보라색), 동아시아(연두색)과 분쟁 지역(노란색)으로 나뉩니다. 이 세 국가는 모두 철저한 전체주의 독재 국가로서 세 나라가 분쟁 지역을 두고 끊임없이 전쟁을 치르지요. 이 지도를 보면, 놀랍게도 서두에서 본 1984년 LA 올림픽 참가국, 불참국의 지도와 매우 유사함을 알 수 있습니다.
오세아니아는 그 존재를 알 수 없는 ‘빅 브라더’를 정점으로, 절대권력을 가진 ‘내부 당(Party)’이 지배하는 나라입니다. 나라 곳곳에 <빅 브라더가 당신을 보고 있다>는 포스터가 붙어있고, 당의 핵심 슬로건은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입니다. 또한, 거리 곳곳, 모든 가정에는 텔레스크린(Telescreen)이라는 대형 화면이 설치되어 나라 안의 모든 사람을 24시간 감시하지요.
주인공인 윈스턴 스미스는 오세아니아의 진리부(Ministry of Truth)의 외부 당원으로서 과거의 역사를 조작하는 일을 합니다. 진리부의 슬로건은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로서 나라 안에서 출판된 과거의 모든 저작물을 현재 시점에 맞게 완벽하고 철저하게 조작하고 재생산합니다. 예를 들어, 수년 전에 당에서 예측했던 올해 특정한 물자의 생산량이 빗나가면, 이를 올해 정확한 생산량에 맞춰 수년 전에 관련하여 발간된 모든 책, 잡지, 신문의 내용을 수정합니다. 이때 구술 기록기(Speakwriter)라는 기기를 사용하는데, 수정할 저작물의 위치와 내용을 마이크에 대고 말하면, 그대로 수정되지요.
윈스턴은 이런 당의 위선에 염증을 느끼고 당에 대한 저항감을 느낍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같은 진리부에 근무하는 ‘줄리아’라는 미모의 당원을 만나게 되고, 줄리아가 건넨 쪽지 “I love you”를 개기로 둘은 금새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오세아니아에서는 남녀 간의 사랑은 상상할 수도 허락되지도 않습니다. 이들이 사랑이 발각되는 날, 이들의 목숨은 온전할 수 없는 것이지요. 이런 위험한 상황에서도 이들 둘은 열정적인 사랑을 키워갑니다.
그들은 우연히 내부 당원인 ‘오브라이언’을 만나게 되고 그가 가입한 지하 단체인 ‘형제단’에 대해 알게 되고, 이내 그들은 이 단체에 가입합니다. 특히, 윈스턴은 오브라이언을 통해 얻은 ‘그 책(the book)’을 통해 내부 당의 근본적인 체제 유지를 위한 온갖 거짓과 불합리성을 확인합니다.
어느 날, 윈스턴과 줄리아가 비밀 아지트에서 사랑을 나눈 후, 창 너머 빨래를 거는 아낙네의 노래 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죽은 사람이에요”라고 말하며 공감합니다. 이 때, 방벽의 액자에서 “너희들은 죽었다”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액자가 떨어지면서 감시용 텔레스크린이 등장합니다. 이제 그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윈스턴과 줄리아는 애정부(Ministry of Love, 사상 범죄 등 모든 범죄를 관리하는 부처)의 고문실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합니다. 거기서 동지로 알았던 오브라이언이 실은 이 모든 일을 꾸민 것임이 드러나고 말지요. 오브라이언은 윈스턴을 전기고문합니다.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된 윈스턴. 오브라이언은 이런 윈스턴의 잘못된 정신 자체를 완전히 개조시키기 위해 음모를 꾸민 것입니다.
윈스턴과 줄리아는 애정부에서 인간으로서 견디기 힘든 모진 고문을 당하고, 진심으로 ‘빅 브라더’를 사랑하는 인간으로 거듭납니다. 둘은 우연히 재회하지만, 이제 예전에 사랑하는 그들이 아니지요. 오직 ‘빅 브라더’에 대한 진실한 사랑만이 남아있는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나고, 쓸쓸히 사형 집행을 기다리며 막을 내립니다. 특히, 영화 ‘1984’는 원작 소설의 끔찍한 고문실의 모습을 너무나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책을 먼저 읽고 나서 영화를 보니, 원작의 느낌이 이처럼 생생하게 전달되는 영화도 드문 것 같네요.
‘1984’의 중심을 관통하는 매우 중요한 개념이 있습니다. 바로 ‘이중사고(doublethink)’입니다. 이는 두 개의 상반된 내용을 모두 옳은 것으로 받아들이는 독특한 사고 방식으로서 주로 내부 당원들이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핵심 사고 체계입니다. 즉 진실과 조작된 진실 모두를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지요.
여기에 덧붙여, 오세아니아의 언어는 신어(Newspeak)로 구성되어 있는데, 가능한 한 허용되는 단어의 수를 극단적으로 줄임으로써 자유로운 사고 자체를 차단합니다. 예를 들어, ‘좀 크다’ 는 ‘plus-big’이라는 유일한 표현만 존재합니다. ‘아주 좋다’는 ‘double-plus-good’이라고만 표현되고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의 맨 뒤에는 이런 ‘신어(新語)의 원리’가 부록으로 실려 있습니다.
조지 오웰은 ‘1984’에서 1948년 당시 스탈린의 공산독재 체제와 유사한 억압된 미래 상을 특유의 저널리스트로서의 치밀하고 정교한 언어로 너무나 생생히 그렸습니다. 그가 그린 암울한 미래가 결코 실현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요즘 세계 곳곳에서 보안이라는 명목으로 24시간 작동하는 수 많은 CCTV들이 실은 또 다른,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빅 브라더’의 눈들 중 하나 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비단 ‘1984’를 소설과 영화로 체험한 저 혼자만의 기우(杞憂)일까요?
특히, 요즘 각광 받는 ‘빅 데이터(Big Data)’의 개념은 예를 들어 한 나라의 국민들이 사용하는 신용카드 지출 내역 및 위치 정보와 같은 방대한 데이터를 발달한 정보통신 기술로서 분석함으로써 이제까지 상상할 수 없던 새로운 가치와 사업을 창조한다고 합니다. 이런 ‘빅 데이터’가 최근 이슈가 되는 해킹에 의해 알게 모르게 악용된다면, 21세기판 ‘1984’가 재현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지 않을까요? 결국, 과학기술의 오남용이 또 다른 ‘빅 브라더’를 낳을 수 있는 가능성을 ‘1984’를 통해 새삼 깨닫게 됩니다. 이외에도 고전문학 속에서 현재를 느낄 수 있는 문학작품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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