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고전이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세요? 아마도 셰익스피어, 세르반테스, 빅토르 위고, 톨스토이 등과 같은 대문호의 문학 작품들일 거예요. 그런데, 요즘 고전 읽기 열풍에도 불구하고 이들 대문호의 작품을 제대로 읽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요.
최근 뮤지컬 형식으로 영화화된 '레미제라블'도 그 원작은 대부분 사람들이 어렸을 때 '장발장'이라는 단행본으로 접했던 소설과는 확연히 다르답니다. 무려 다섯 권에 이르는 어마어마하게 방대한 내용의 문학작품이지요. 사실, 영화 '레미제라블'에 나와있는 스토리라인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답니다. 원작 레미제라블은 당시 프랑스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총망라한 역사서(?)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지요. 역시나 '고전'으로 향하는 길은 쉽지 않은거 같아요. 특히, 오늘을 살아가는 바쁜 직장인들에게 고전은 아직도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아닐런지요?
그렇다면, 진정 고전이란 길~고 어렵기만 한 작품을 일컫는 단어일까요? 고전의 사전적 의미로는 '오랫동안 많은 사람에게 널리 읽히고 모범이 될 만한 문학이나 예술 작품(내용출처: 네이버 사전)' 으로 정의됩니다. 하지만 이런 정의에 의한다면, 고전이 대문호의 작품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그래서 이번에는 큰 마음의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고전작품을 여러분께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번에 다룰 고전은 '레베카(Rebecca)'입니다. 대프니 드 모리에(Daphne du Maurier, 1907~1989)라는 영국의 소설가 겸 극작가의 1938년 작품이지요. 당시 출판되자 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하는데, 많은 고전들처럼 작가의 사후에야 비로소 인정받은 경우와는 다르지요. 지금까지도 전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으니, 대프니 드 모리에는 분명 축복받은 작가가 아닐까 합니다. 이 작품은 특히, 1940년 '스릴러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영화화했고, 이듬해 아카데미 작품상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수상하면서 전세계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작품소개는 충분히 했으니 이제, 세계적인 로맨스 스릴러 '레베카'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극중 주인공인 '나'는 부잣집 마님인 '반 호프' 부인의 말동무가 직업입니다. 그녀는 반 호프 부인과 함께 한 여행지에서 우연한 기회에 '막심 드 윈터'라는 부자 남자를 만나지요. 막심은 아내 레베카를 잃고 실의의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는데, 이내 순진무구한 '나'와 사랑에 빠지고 결혼합니다. 그들은 막심의 초호화 대저택 맨덜리로 돌아와 행복한 인생을 꿈꿉니다.
그러나, 이것은 극적인 대반전의 서막이었습니다. 맨덜리 대저택의 수 십 명의 하인들의 총집사인 '댄버스' 부인의 카리스마와 레베카와에 대한 근원을 알 수 없는 충성심과 병적인 집착은 '나'의 목을 점점 조입니다. 과연 레베카는 어떤 인물이었단 말일까요?
소설 '레베카'에는 레베카가 없습니다. 시작부터 이미 죽은 사람이었으니, 당연하지요. 그러나, 댄버스 부인의 광적인 집착행동, '나'와의 결혼 후에도 레베카로부터 벋어나지 못하는 막심과 그 주변 사람들의 알 수 없는 행동은 어쩌면 레베카가 이야기의 말미에 '짠'하고 나올 것 같다는 강한 예감을 들게 하지만 끝내 나오지 않습니다. 이런 레베카가 '레베카'의 정점에 있습니다. 이야기 곳곳에 레베카를 그릴 수 있는 단서들이 언급됩니다. 소위 절대 미모, 지성, 사교술을 겸비한 '만인의 연인' 이미지이지요. 이에 비해 '나'는 너무나 초라합니다. 이야기가 흐를수록 '나'는 레베카에게서 벋어나려 발버둥칩니다.
집안 분위기 전환을 위해 가장무도회를 기획한 '나'. 그러나, 댄버스 부인의 계략에 말려 예전에 레베카가 입었던 화려한 드레스를 입게 되고, 이를 본 막심은 분노하고 맙니다. 모든 것이 꼬여버린 상황에서 댄버스 부인은 '나'에게 자살을 유도하는 기괴한 행동을 하지요. 이튿날 자살로 죽은 것으로 장례까지 치러졌던 레베카의 시신이 저택의 인근 바다 속 요트 안에서 발견됩니다. 다시 막심이 용의자로 지목되고 재판을 받는데, 그 과정에서 레베카가 사촌인 '잭 파벨'과 내연 관계였던 증거가 나왔고, 이는 막심을 더욱 궁지로 내몹니다. 실은 막심이 레베카와 그 문제로 다투다가 실수로 레베카를 죽이게 되고, 레베카의 시신을 요트에 실어 바다로 수장 시켰던 것이지요.
그런데, 대반전이 일어납니다. 실은 레베카가 암 말기 환자였다는 사실이지요. 더 이상 살 수 없음을 안 레베카가 인생을 자포자기하는 과정에서 우발적인 사고가 난 것임이 밝혀집니다. 극중에서 결국 레베카의 자살로 정리되고, '레베카'의 하이라이트인 극적인 사건이 발생합니다. 맨덜리 대저택이 댄버스 부인의 방화로 그녀 자신도 함께 잿더미가 되며, 영화의 막이 내립니다.
이런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영화에 그칠 리 없지요. 레베카는 2006년 히치콕의 영화에 근간하여 독일의 '미하엘 쿤체'와 '실베스터 르베이'에 의해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뮤지컬로 재탄생합니다. 이후, 일본, 핀란드, 러시아, 헝가리 등 여러 나라에서 공연되었고, 올해 초 우리나라에서도 공연하여 성공을 거뒀으며, 다시 무대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지요. 저는 회사의 문화동호회에서 지난 3월 단체 관람했네요. 특히, 댄버스 부인 역의 옥주현의 신들린 듯한 폭발적인 노래와 연기는 많은 관람객들의 가슴을 뻥 뚫리게 합니다.
원작 소설, 영화, 뮤지컬은 각각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영화와 뮤지컬은 맨 마지막 부분 정도만 다르지요. 뮤지컬에서는 화재 후 막심과 '나'가 새로운 인생을 향해 걸어가는 장면으로 마칩니다. 원작과 영화를 비교하면, 원작에서는 막심이 레베카를 총으로 살해하고, 맨덜리 대저택이 불타지도 않으며, 막심과 '나'가 맨덜리를 떠나 유럽의 호텔들을 전전하는 다소 애매한 결말을 보입니다.
일반적으로 고전이라고 하면 뭔가 교훈이 있는데, '레베카'에서 굳이 권선징악과 같은 교훈을 찾고 싶지는 않습니다. 단지 대프니 드 모리에의 긴장감 높고,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강력한 '스토리텔링'의 힘이 70여 년이 지난 오늘까지 여러 형태로 변신하며 전세계인들에게 또 다른 감동과 신선한 몰입의 체험을 선사하며, 또 다른 고전의 묘미를 충분히 느끼게 합니다. 봄에서 여름으로 접어드는 이 때, 올해 마지막 봄꽃을 즐기면서 고전의 향기 또한 흠뻑 취해 보는건 어떨까요? 여러분의 추천고전을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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