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트로이'에서 오디세우스>
*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위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영화 트로이(Troy, 2004년)에서 오디세우스가 아킬레스의 장례식에서 한 말입니다. 고대 그리스 위대한 시인 호메로스의 불후의 걸작 ‘일리아드’는 아킬레스와 헥토르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히 그리스 신화 최고의 영웅 중 하나인 아킬레스의 어이없는 죽음은 모든 읽는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데요, 그의 장례식에서 지장(智將) 오디세우스의 대사는 어쩌면 ‘일리아드’에서 아킬레스를 전쟁에 끌어들이고 유명한 ‘트로이 목마’ 전략을 고안했지만, 조연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한탄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만일 호메로스가 ‘일리아드’만 썼다면, 오디세우스는 우리의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졌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트로이 전쟁 10년 이후, 오디세우스의 기상천외한 10년 간의 모험은 무려 2,700년이 지난 오늘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변치 않은 깊은 감동과 재미를 주고, 아울러 인생의 의미를 생각하게 합니다.
최근 ‘고전 읽기’가 중요한 트렌드의 하나로 자리 잡았고 고전을 읽을 때는 대부분 번역본으로 읽곤 하는데, 본문과 주해를 왔다 갔다 하다 보면 읽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특히,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는 방대한 서사시 형태라서 주위에 일독했다는 사람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저도 이야기 형태로 재구성한 ‘오디세이아’를 간신히 일독했는데 전체적인 스토리는 파악이 되었으나, 원전에서 느낄 수 있을 법한(?) 그 무언가가 모자람을 느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영화 ‘율리시스(Ulysses,1954년)’를 접했습니다. 당시 유명했던 커크 더글러스(Kirk Douglas)가 오디세우스(로마명 율리시스)로 나오는데 컴퓨터 그래픽(CG)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던 당시를 감안하면 원초적(?) 특수효과로도 이렇게 멋진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동시에 떠오른 아이디어가 ‘영화로 고전 읽기’ 였어요. 2시간 내외의 고전을 다룬 영화를 보면서 고전을 접하는 것도 바쁜 일상에서 효율적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 이제 영화 '율리시스' 속의 오디세우스의 모험의 세계로 들어가 볼까요?
10년간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오디세우스는 부하들과 함께 고향 이타카(Ithaca)로 머나먼 항해 길에 오릅니다. 트로이 전쟁에서 바다의 신 포세이돈(로마명 넵튠)을 노하게 하여 귀향 길 내내 엄청난 풍랑과 시련을 겪습니다. 외눈박이 거인이자 포세이돈의 아들인 폴리페모스로부터 기지를 발휘하여 탈출하고, 사이렌의 유혹을 정면으로 도전하여 이겨내며 귀향합니다. 특히, 사이렌이 다가오자 다른 부하들은 귀를 밀납으로 봉한 채 눈을 감고 노를 젖게 하고, 자신은 귀를 막지 않은 대신 몸을 돛대에 묶고는 사이렌의 미모와 미성을 만끽하며 몸부림쳤지요. 모험을 추구하는 오디세우스의 기질을 잘 보여주는 장면인 것 같습니다.
오디세우스 일행은 이어서 마녀 키르케의 섬에 도착하는데, 부하들이 마법에 걸려 모두 돼지로 변하는 수모를 겪고 다행히 부하들은 마법에서 풀렸으나, 오디세우스에게 반한 키르케의 술책에 걸려 1년 더 그 섬에 머물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부하들을 모두 잃고 나서야 정신을 찾은 오디세우스는 홀로 고향 이타카로 다시 외로운 항해를 떠납니다.
그런데, 이타카에 돌아온 오디세우스는 곧바로 사랑하는 미모의 아내 페넬로페와 유일한 아들 텔레마코스에게 가지 않습니다. 걸인으로 변장하여 아내의 진정한 사랑을 확인하고 숱한 시간 동안 아내를 괴롭혀왔던 청혼자들에 대한 복수를 계획합니다. 마지막 순간에 집에 있던 자신의 대궁(大弓)으로 모든 청혼자들을 무참히 처단하고, 아내 페넬로페와 극적으로 재회하며 막을 내리게 됩니다.
위대한 고전 ‘오디세이아’를 옮긴 영화 ‘율리시스’는 영화 자체가 명작 고전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원전에 있는 다른 모험 에피소드가 많이 빠져있어요. 예를 들면, 죽은 자들의 영혼이 사는 지하세계로 가서 예언자 테이레시아스의 생존을 위한 조언을 듣는 것, 오기기아 섬에서 바다의 님프 칼립소와의 만남 등이 빠져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방대한 분량의 이야기를 군더더기 없이 100분의 화면에 담은 편집 기술 또한 압권이었습니다.
오디세우스에게 고향 이타카는 늘 돌아가야 할 인생의 목표였습니다. 그러나 오디세우스는 목표에 도달하는 것 자체를 추구하지 않았어요. 그 과정의 모든 고난과 역경을 즐기고, 더 나아가 새로운 난관을 위해 가차없는 항해를 지속했습니다. 심지어 고향에 당도한 후에도 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그 과정을 박진감 넘치는 모험으로 승화했죠.
요즘 주위를 둘러보면 이런 영웅이 없습니다. 가능한 위험이나 어려움 없이 편하게 살기를, 호의호식을 추구하는 금권주의 중심의 사회로 변질된 지 오래지요. 이 때문에 어쩌면 오디세우스 같은 캐릭터가 말 그대로 동화에서나 볼 수 있는 상상의 인간으로 폄하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인생을 목적지 없는 끊임없는 항해로 보는 오디세우스. 이런 시대일수록 오디세우스와 같은 고전적인 진정한 영웅이 절실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