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화케미칼 CEO 방한홍
"우리에게 휴가란~?"
얼마 전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임원의 얼굴을 봤는데, 한결 생기가 있고 밝아진 모습을 보며 ‘역시 휴가란 좋은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틀에 박힌 일상에서 생활하는 직장인에게 휴가는 그야말로 사막의 오아시스에 비교될 수 있는 것 아닐까. 우리는 누구나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을 꿈꾼다. 휴가는 그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이기에 생각만으로도 우리의 가슴을 설레고 행복하게 한다. 낯선 이국 땅에서 즐기는 여유, 답답한 도시를 벗어나 자연과 하나되는 풍경, 또는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일상의 소박한 자유를 그리기도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 직장인에게 휴가란 신나는 일만은 아닌 것 같다.
본격적인 휴가 성수기가 시작되면 전국의 바닷가, 휴양림, 관광지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만성적인 교통체증으로 금쪽같은 시간을 길 위에서 보내기도 한다. 매년 이처럼 피곤한 휴가를 되풀이하는 것이 우리나라 평균적인 직장인의 모습이다.
최근 직장인의 휴가에 관한 기사를 보았는데, 휴가기간을 묻는 질문에 ‘사용하지 않는다’ 혹은 ‘1~3일’
이라는 대답이 절반에 육박했으며, ‘휴가를 사용할 때 부담스러운 부분’은 ‘상사의 눈치’, ‘밀리는 업무’,
‘적은 휴가일수’라는 답변이 대부분이었다. ‘휴가 도중에 업무를 처리한 적이 있다’는 답변도 76%나
나왔다. 최근 휴식의 중요성에 대한 분위기가 확산된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는 얘기
다.
OECD 회원국 중 우리나라가 근로시간이 가장 긴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연평균 노동시간은 회원국 중 가장 많은 2,193시간이지만 1인당 생산성은 최하위권이다. 평균치보다 연간 500시간을 더 일하는 셈인데, 이는 한계치까지 일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공장의 기계도 1년 주기로 정비를 하는데, 사람의 경우 적당한 휴식은 경쟁력 강화의 필수요소라 생각한다.
솔직히, 우리 기업문화는 쉬는 것에 좀 더 관대해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 사패산 등정(2012. 5. 19)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이 인식의 전환이다.
“요즘 실적도 안 좋은데…”, “우리 때는 말이야…” 라는 고리타분한 생각부터 고쳐야 한다. 휴가 제도 또한 좀더 탄력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한창 현장에서 일하던 때를 생각해보면 요즘은 상하반기 각 5일에 연차까지 사용할 수 있으니 과거에 비해 많이 좋아진 것이 사실이다. 독일에서 근무하던 1980년대 말 90년대 초, 독일인들은 10년 정도 근무하면 휴가가 30일 가량 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것도 근무일 기준이라 여름 한 달을 통째로 쉬어도 우수리가 남았다. 한편으론 부럽기도 했지만 기술, 자본, 자원을 갖춘 유럽의 경제부국과 어느 것 하나 경쟁력을 갖추지 못했던 우리나라가 유럽처럼 즐긴다면 국가경쟁력이 어떻게 될지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있다.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유럽처럼 긴 휴가는 현실적으로 힘들겠지만 휴가기간이 채 일주일도 안 된다면 충분한 휴식을 취하거나 자기계발을 위해 무언가를 하기에는 다소 짧은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 모바일 기기의 발달로 직장에서 꼭 자리를 지키지 않아도 업무처리가 가능하니 필요하다면 이와 같은 방법을 활용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휴식은 때로는 풀리지 않는 문제의 실마리 역할도 한다.
몰두했던 일들을 잠시 잊을 때 새로운 영감을 얻기도 하는데, 이는 비웠을 때 통찰력을 더 깊게 해주기 때문이다. 부력의 원리를 발견한 아르키메데스가 그랬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다는 뉴튼이 그랬다. 위대한 발견은 아니지만 풀리지 않는 숙제를 어느 순간 문득 떠오른 아이디어로 해결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문제와 정답은 아주 가깝지만 엉뚱한 곳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채우기 위해서는 비워야 한다.
우리는 너무 채우기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휴가를 뜻하는 프랑스어 ‘바캉스(vacance)’와 영어의 ‘베이케이션(vacation)’은 라틴어 ‘바카티오(Vacatio)’가 어원으로 ‘비운다’는 뜻을 갖고 있다. 휴가란 자고로 완벽하게 비우는 것이다. 그래야 더 큰 것을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잘 쉬어야 한다.
휴가는 재충전을 통해 역동적으로 근무할 수 있도록 해주는 활력소인 것만은 확실하다.
어떤 직원은 이번 휴가 때 아프리카에서 상어 먹이주기 체험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또 어떤 직원은 오지로 봉사활동을 떠난다고 한다. 요즘에는 휴가를 이용해 사찰에서 명상을 통해 몸과 마음을 정화하고 오는 직원도 많은 것 같다. 휴식을 통해 많이 비우고, 더 큰 것을 채울 수 있는 큰 그릇을 만 들어 왔으면 좋겠다. 기회가 되면 생기 넘치는 표정으로 전하는 그 생생한 얘기도 다 들어보고 싶다.
※ 해당 내용은 서울신문 2012. 7. 16(월)일자 "CEO칼럼" 기고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