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동물을 잡는 것, 특히 낚시를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낚시와 관련하여 인상 깊게 본 영화가 있는데요. 로버트 레드포드(Robert Redford)가 감독하고 브래드 피트(Brad Pitt)가 열연한 ‘흐르는 강물처럼(A River Runs Through It, 1992)’이란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서 ‘플라이 낚시(Fly Fishing)’라는 환상적인(?) 낚시 방법을 처음 접했지요. 지렁이를 미끼로 한 낚시만 봐와서 낚시를 좋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플라이 낚시는 한번쯤 해보고 싶더군요.
플라이 낚시는 일반적인 낚시와 달리 끊임없이 낚싯대를 리듬에 맞춰 휘둘러줘야 하고, 지렁이 같은 생물이 아닌, 곤충처럼 생긴 형형색색의 가짜 미끼를 쓴다는 점에서 지렁이를 미끼로 한 일반 낚시보다는 덜 혐오스러운 것 같습니다.
이런 미끼가 비단 낚시에만 쓰이지 않는다는 것은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겁니다. 대표적인 것이 한 때 대형 마트에서 파격적으로 낮은 가격에 인기리에 판매되었던, ‘통큰 OO’ 시리즈로 대변되는 소위 ‘미끼 상품’입니다. 소비자들을 초저가에 양과 질 모두 경쟁력이 있는 ‘미끼 상품’들을 사러 구름처럼 대형 마트에 몰려듭니다. 그리고, 마트에 온 김에 ‘미끼 상품’보다 많은 금액의 물건들을 구매하곤 하죠.
미끼가 효과적으로(?) 사용되는 또 다른 분야가 영화입니다. 소위 ‘맥거핀(MacGuffin)’이라 불리는 교묘한 장치를 영화 전반에 깔고 관객들을 이야기 속으로 쏙 빠져들게 만듭니다. 맥거핀 그 자체는 특별한 의미가 없는데 말이죠. 서스펜스의 거장으로 추앙 받는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이 이런 ‘맥거핀’을 영화에 효과적으로 활용한 효시이자 최고봉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서스펜스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
맥거핀, 용어 자체가 많이 생경합니다. 히치콕은 1966년 프랑스의 유명한 영화 감독 프랑스와 트뤼포(Francois Truffaut)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맥거핀을 정의합니다.
"스코틀랜드 행 기차에 앉은 두 남자가 있습니다. 한 남자가 다른 사람에게 묻습니다.
'죄송합니다만, 선생님 머리 위에 화물용 선반에 있는 이상한 꾸러미는 뭔가요?'
다른 사람이 대답합니다. '아하, 그건 맥거핀입니다.' 먼저 사람이 묻습니다. '그런데 맥거핀이 뭡니까?' 다른 사람이 대답합니다. '스코틀랜드의 산악지방에서 사자를 잡는 장치입니다.' 먼저 사람이 묻죠. '그렇지만, 스코틀랜드 산악지방에는 사자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면 다른 사람이 대답합니다. '그렇다면, 저건 맥거핀이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맥거핀이란 아무것도 아닙니다.”
(Source: ‘히치콕: 현대예술의 거장’, 패트릭 맥길리건 著, 을유문화사)
영화 미션 임파서블3(Mission: Impossible 3, 2006)를 보셨는지요. 국내에 ‘친절한 톰 아저씨’로 알려진 톰 크루즈(Tom Cruise)가 제작 및 주연까지 맡아 전세계적인 흥행에 성공한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죠. 제작비만 무려 2천억원이 들었다고 하네요. 톰 크루즈가 IMF(Impossible Mission Force)라는 비밀정보 기관의 에이스 요원 ‘이단 헌트’로 활약하는데요. 전편의 시리즈에서와 같이 전세계를 누비며 소위 ‘불가능한 미션’을 수행합니다.
이 영화에서 악당들은 이단의 약혼녀를 인질로 잡고 이단에게 ‘토끼발(Rabbit Foot)’이라는 것을 집요하게 찾아오도록 합니다. 이단은 ‘토끼발’이 놈들의 손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면서, 자신의 약혼녀도 구출하는 불가능한 작전을 감행합니다. 그런데, 이 ‘토끼발’이라는 것이 영화가 끝날 때까지 확실하게 나오질 않아요. 단지 인류에게 엄청난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생화학 무기쯤으로 추축될 뿐입니다.
관객의 궁금증을 해소라도 할 요량으로(?) 영화의 말미에 주인공인 이단이 IMF 국장에게 “토끼발이 뭐죠?”라고 묻지만, 국장은 끝내 말해주지 않습니다. 관객들은 영화 내내 이단과 똑같은 의문을 품고 영화 끝까지 계속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죠. 그러나, 피앙세와 재회하는 해피 엔딩에 가려 ‘토끼발’에 대한 궁금증도 슬며시 사라집니다. 이 토끼발이 결국 맥거핀 역할을 한 셈이죠.
이번에 다루는 이야기인 ‘몰타의 매(The Maltese Falcon)’에도 이런 맥거핀이 등장합니다. 바로 제목 자체인 ‘몰타의 매’가 그 역할을 담당하죠.
‘몰타의 매’는 하드보일드(Hard-boiled: 불필요한 수식을 일체 빼버리고, 신속하고 거친 묘사로 사실만을 쌓아 올리는 수법. 특히 추리소설에서 추리보다는 행동에 중점을 두는 하나의 유형. 출처: 두산백과) 추리소설의 거장 대실 해밋(Samuel Dashiell Hammett, 1894~1961)의 대표적인 작품으로서, 무려 세 차례나 영화로 만들어졌답니다. 가장 유명한 것이 가장 마지막에 만들어진 험프리 보가트(Humphrey Bogart)가 출연한 1941년 작품입니다. 이 영화에서 험프리 보가트는 사립 탐정 ‘샘 스페이드’로 나옵니다. 냉철하고 감정 변화를 잘 드러내지 않는 그만의 특유의 건조한 톤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갑니다.
▲ 험프리 보카트(우)가 출연한 1941년 작품 '몰타의 매' 영화 포스터(좌)
영화는 ‘원덜리’라는 미모의 여인이 스페이드의 탐정 사무실을 찾아와서 ‘서스비’라는 남자와 사랑에 빠진 자신의 여동생을 찾아달라고 의뢰하면서 시작됩니다. 이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서스비와 샘의 파트너인 ‘마일스 아처’가 모두 죽게 됩니다. 그런데, 경찰은 엉뚱하게도 샘과 아처의 아내의 내연 관계를 알아내고 샘을 이 두 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몰고 갑니다. 샘은 ‘원덜리’라는 의뢰인의 본명이 ‘브리지드 오쇼네시’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녀에 대한 불신과 알 수 없는 사랑의 감정이 교차되며 샘은 혼란에 빠집니다.
한편, ‘조엘 카이로’라는 남자가 샘의 사무실로 찾아와서 샘에게 드디어 ‘몰타의 매’라는 검은 조각상을 찾아달라고 의뢰합니다. 거액의 사례금을 제시하면서 말이죠. 한편, 오쇼네시는 샘에게 이 ‘몰타의 매’를 찾고 있던 중에 서스비가 그 위치를 알고 있어서 그의 미행을 의뢰했다고 말합니다. 이후 이 둘은 힘을 합쳐 ‘몰타의 매’ 찾기에 돌입하죠. 이 때부터 관객들은 ‘몰타의 매’에 본격적으로 빠져듭니다.
▲ 샌프란시스코의 존스 카페에 있는 ‘몰타의 매’ 모조품
샘은 ‘몰타의 매’를 찾기 위해 무려 17년이나 집요한 추적을 해온 ‘거트먼’이라는 거물을 만나게 됩니다. 카이로는 거트먼의 수하였습니다. 거트먼으로부터 이 ‘몰타의 매’라는 것이 정말 대단한 보물이었다는 걸 알게 되죠. 몰타 섬이 스페인의 지배 하에 있을 때, 스페인 황제에게 바치려 했던 금과 보석으로 만들어진 ‘매’라는 겁니다. 이를 숨기기 위해 검은 색 에나멜을 두껍게 칠했고요.
우여곡절 끝에 샘은 ‘몰타의 매’를 손에 넣게 됩니다. 그리고는 거트먼과 흥정을 시작합니다. 아울러, 살인 사건에 대한 실마리를 풀고, ‘몰타의 매’의 존재를 숨기기 위해 희생양이 될 범인을 제안합니다. 바로 서스비를 살해한 거트먼의 수하인 ‘윌머’를 지목하는데요. 이 과정에서 샘은 치밀한 추리와 논리로 사건의 얼개를 맞춰나갑니다.
▲ 샘 스페이드 ▲ 거트먼과 카이로
마침내, 샘은 ‘몰타의 매’를 거트먼에게 주고 사례금을 받습니다. 그런데, 오매불망 17년을 찾아 헤맸던 ‘몰타의 매’가 실은 가짜 납 덩어리였음을 알게 됩니다. 거트먼은 비록 낙담했으나, 대인배의 정신(?)을 발휘하여 노여워하지 않고, 다시 진짜 ‘몰타의 매’를 찾아 수하들과 떠납니다. 물론 샘에게 준 사례금 중 샘의 수수료만 제외하고는 돌려 받고요.
샘은 경찰에 신고하여 거트먼 일당들을 체포하도록 하고, 오쇼네시가 자신의 동업자이자 파트너인 마일스 아처를 죽인 것을 알아냅니다. 오쇼네시와 사랑의 감정이 조금은 남아있긴 했습니다만, 오쇼네시의 거짓말에 이제 지친 샘은 냉정하게도 오쇼네시를 경찰에게 넘깁니다. 영화의 마지막에 경찰이 샘에게 ‘몰타의 매’를 가리키며 뭐냐고 묻습니다. 샘은 “헛된 꿈이 산물이지”라고 대답합니다. 경찰에게 연행되어 엘리베이터를 내려가는 오쇼네시. 가짜로 판명된 ‘몰타의 매’를 들고 계단을 내려가는 샘이 이어지면서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이 영화는 원작을 거의 그대로 담아냈습니다. 원작과 다른 점이 있다면, 거트먼이 사례금을 오쇼네시에게 건네고 중간에 사례금 봉투를 확인하는데 1,000불이 빠져있음을 우연히 확인합니다. 실은 거트먼이 샘의 추리 능력을 테스트하고자 몰래 숨긴 것이었죠. 원작에서는 샘이 오쇼네시와 욕실로 들어가서 옷을 모두 벗게 하여 몸수색을 합니다만, 영화에서는 샘의 추리를 듣고 바로 거트먼이 이실직고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마지막 장면도 원작에서는 샘이 여느 때와 같이 자신의 사무실에 출근하여 새로운 일상을 시작하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 대실 해밋(좌)과 그의 묘(우)
원작자인 대실 해밋은 매우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입니다. 집이 가난하여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다양한 일들을 전전했다고 합니다. 특히, 그가 쓴 수많은 탐정소설들은 실제로 당시에 미국 최대의 탐정 업체였던 핑커턴 탐정회사(Pinkerton National Detective Agency)에서 6년 여 탐정 요원으로 일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고요. 더욱이, 그는 미국의 알렝턴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있는데, 그의 묘비를 보면 1차, 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이 있었기에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이라는 영역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고, 이후 수많은 작가들과 영화계 관계자들에게 영감을 주었던 것 같네요. 실제로 그는 영화 제작에도 많이 참여했답니다.
그의 대표작인 ‘몰타의 매’를 읽어보시면 ‘하드보일드 추리 소설이 이런 것이구나!’라는 것을 알게 해줍니다. 철저히 3인칭 관찰자의 시점에서 등장 인물들이 감정에 대한 언급 없이 시각적으로 스토리를 이끌어 갑니다. 새로운 인물이 등장할 때마다 빠짐 없이 전개되는 외모에 대한 생생한 묘사는 마치 영화 장면을 보는 듯하죠. 그래서 그의 소설들이 보다 쉽게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특히, 잠시도 쉴 겨를 없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스토리는 어쩌면 그의 삶을 많이 닮은 것 같네요.
‘몰타의 매’는 결국 전체 이야기를 끌고 간 맥거핀에 불과했습니다만, 어쩌면 우리의 인생에도 수많은 맥거핀들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높은 지위일수도, 명예, 돈, 또는 사랑일수도 있겠죠. 이런 인생의 목표, 인생의 맥거핀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인생의 희로애락을 경험하며 인생의 목표 자체보다는 한 인간으로서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들을 배우고, 더욱 성숙해나가는 건 아닐까요? 그래서, 누구의 인생이든 결국 아름다울 수 있지 않을지요.
다음 번에는 공상과학 소설의 선구자 메리 W. 셀리의 대표작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 1818년 作)을 다루겠습니다. 1931년에 영화화되었는데, 괴기 영화의 고전 중의 고전이자 최고봉으로까지 평가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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