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즈 하나 풀어볼까요?
다음 영화들의 공통점은? 주관식입니다.
가위손, 블레이드 러너, 바이센티니얼 맨, 에이 아이(A.I.), 그리고 터미네이터
문제가 너무 쉬운가요?
정답은, '인조 인간'이 주인공인 영화'입니다.
'가위손(1991년)'에서 블랙 가죽 패션이 꽤 인상적이었던 가위손을 가진 인조 인간 '에드워드'.
현대 공상과학(Science Fiction, SF) 영화의 기념비적 고전인 '블레이드 러너(1982년)'에서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고 아름다웠던 '리플리컨트(Replicant, 복제물이라는 의미임)'로 불리었던 안드로이드(Android, 겉보기에 말이나 행동이 사람과 거의 구별이 안 되는 로봇,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레이첼'과 그의 친구 리플리컨트 '로이'와 '프리스'
SF 문학의 세계적인 거장 아이작 아시모프 원작의 '바이센티니얼 맨(1999년)'에서 가사 도우미 로봇으로 태어났는데, 제작 과정에서 우연히 감정과 지능, 호기심을 갖게 되고, 자신을 계속 개조 하여, 마침내 진정한(?) 인간으로 200여 년의 생을 마치는 인조 인간 '앤드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대작 '에이 아이(A.I., 2001년)'에서 자신을 입양했던 엄마와 궁극의 사랑을 찾아가는 감정을 가진 인조 인간 로봇 '데이비드'.
그러나, 위의 모든 영화들을 단 한 방에 잠재울 수 있는 강력한 인조 인간은 뭐니뭐니해도 '터미네이터'가 아닐까 합니다. 초등학교 시절에 극장에서 보았던 '터미네이터'는 영화 '스타워즈(1977년)'를 보고 실제 사실로 느꼈던 충격 그 이상을 제게 줬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위의 다섯 개 영화 모두 흥행에 성공하였고, 관객과 비평가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은 바 있습니다.
'인조 인간', 더 나아가 인공적인 '생명 창조'는 아마도 인류 과학 기술의 궁극의 지향점이자, 신의 영역에 조금 더 가까워지려는 인간의 무한한 욕망의 대표적인 테마 중 하나라 생각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지난 8월말에 깜짝 놀랄 뉴스를 접했는데요. 오스트리아의 한 연구소에서 인간의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해서 임신 9주차 태아의 뇌와 비슷한 4mm 크기의 인공 뇌를 만들었다는 겁니다. 더욱이 만들어진 뇌가 제대로 작동하는지도 확인했다고 하며, 세계적으로 저명한 과학 학술지인 '네이처'誌애 게재되었답니다.
▲ 4mm 인공뇌
이제 '인조 인간', '합성 생물' 이런 개념들이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실생활의 일부가 될 날이 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런 '인조 인간'에 대한 최초의 공상 과학 소설로 알려진 것이 바로 '메리 W. 셸리'의 '프랑켄슈타인-현대의 프로메테우스(1818년)' 입니다. 근 200년 전에 이런 주제의 소설이 나왔다는 게 믿기지가 않습니다. '프랑켄슈타인'에 대해 많은 분들이 갖고 있는 잘못 알고 계신 것이 "괴물의 이름이 '프랑켄슈타인'이다." 입니다. 이 괴물의 이름은 없고, 그냥 '괴물(Monster 또는 Creature로 불림)'입니다. 이 괴물을 만든 사람의 이름이 '프랑켄슈타인'이죠.
이 '프랑켄슈타인'이 최초로 영화로 만들어진 것은 무성영화 시절인 1910년 'J. 시얼 더둘리' 감독의 작품인데요. 12분 여 분량의 짧은 시간 동안 소설 전체의 내용을 압축하여 보여줍니다. YouTube 등에서 볼 수 있습니다.
'프랑켄슈타인' 영화의 실질적인 원조로 알려진 것은 1931년, 제임스 웨일 감독의 작품인데요. 이 영화는 세계 공포 영화사에 길이 빛날 기념비적인 고전 중에 고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 중 하나인 목에 나사가 붙어있는 '몬스터(Monster)'는 수 많은 세계인들에게 '괴물'의 대명사로 각인되어있죠.
이 영화의 스토리는 메리 W. 셸리의 원작과는 상당히 다릅니다. 원작에서는 주인공의 이름이 '빅터 프랑켄슈타인'이고, 절친한 친구의 이름이 '헨리'인데, 이 영화에서는 '헨리 프랑켄슈타인'와 그 친구가 '빅터'로 바뀝니다. 뿐만이 아니라, 내용 전반에 차이가 있는데요. 원작의 내용은 뒤에서 다루겠습니다.
이 영화는 한 노신사가 무대 앞으로 나와서 '이 영화는 전율과 공포스럽기 때문에 심장이 약한 사람은 보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경고를 하며 시작합니다. 참 독특하죠. 이어서 오프닝 크레딧이 흐르고, 헨리 프랑켄슈타인과 그의 조수 프리츠가 묘지에서 몰래 시체를 꺼내는 장면으로 영화가 본격 시작합니다.
주인공인 헨리 프랑켄슈타인은 '인간 창조'라는 신의 영역의 엄청난 과업을 달성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편집광 과학자입니다. 오래된 성(城)에 자신만의 연구실을 차려 놓고 밤낮 없이 연구에 몰두하죠. 그의 지도 교수인 발트먼은 이런 프랑켄슈타인에게 연구를 중단하라고 경고하죠.
폭풍우 치는 어느 날 밤, 프랑켄슈타인은 번개를 이용한 강한 전기로 드디어 그렇게도 고대하던 '괴물'을 만드는데 성공합니다.
이후 이 괴물은 프랑켄슈타인과 발트만 교수의 실험 대상으로서 학대 당합니다. 그 과정에서 괴물은 프리츠와 발트먼 교수를 죽이고 연구실을 탈출합니다. 괴물은 프랑켄슈타인이 살고 있는 마을로 향하던 중 마리아라는 소녀를 만나고, 처음으로 인간(?)으로서의 대우를 받는데, 우연히 그 소녀를 죽입니다.
한편, 과도한 연구로 쇠약해진 몸, 조수의 죽음, 괴물의 탈출 등을 겪은 프랑켄슈타인은 고향으로 돌아가서 약혼녀 엘리자베스와 결혼하기로 합니다. 결혼식 피로연이 한참인 때, 마을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마리아의 죽음.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의 소행임을 직감하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괴물을 찾아 나섭니다. 마침내, 마을 풍차 방앗간에서 괴물과 조우하는 프랑켄슈타인 사투 끝에 프랑켄슈타인은 풍차 밑으로 떨어지고 풍차에 낀 괴물은 마을사람들이 던진 불에 풍차 방앗간이 전소되면서 사라집니다. 이후, 프랑켄슈타인은 집으로 옮겨져 휴식을 취하며 해피 엔딩으로 막을 내립니다.
이 영화에서 프랑켄슈타인의 연구실에서 엄청난 전류가 흐르는 것을 실감 있게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소위 특수 효과 기술이 일천했던 당시를 생각하면, 이 영화가 정령 1931년에 만들어진 영화인가를 의심케 합니다. 연구실의 레이아웃도 상당히 사실적으로 그려졌으며, 뭐니뭐니해도 압권은 거의 완벽에 가까운 괴물 분장이었습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구성이 있었는데, 이 영화가 시작할 때 오프닝 크레딧에 다른 캐릭터들은 역할을 맡은 배우 이름이 명시되었는데, 유독 괴물 역의 배우만 이름을 "?"로 표현했다는 겁니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영화가 끝나고 마지막 엔딩 크레딧에서는 괴물 역의 배우 이름이 나옵니다. 바로 보리스 칼로프(Boris Karloff, 1887~1969)입니다. 그는 '프랑켄슈타인'에서 보여준 괴물로서의 강한 인상을 바탕으로 이후 '프랑켄슈타인의 신부(1935년)', '프랑켄슈타인의 아들(1939)', 그 이후에도 프랑켄슈타인 관련 영화에 연이어 출연하는 등 공포 영화 분야에 독보적인 족적을 남깁니다.
한편, 19994년에 메리 W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이 다시 영화로 만들어집니다. 그 제목도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인데요. 제목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제까지 영화로 만들어진 그 어떤 프랑켄슈타인 영화들 중에서 가장 원작에 충실하게 만들어졌습니다. 감독은 아일랜드 출신의 유명 연극 배우이자, 영화 배우이며, 한 때 영국 배우 엠마 톰슨의 남편이었던 캐네스 브래너(Kenneth Branagh)입니다. 그는 감독과 주연(빅터 프랑켄슈타인 역)을 동시에 맡습니다. 괴물 역은 로버트 드니로(Robert De Niro)가, 엘리자베스 역은 헬레나 본햄 카터(Helena Bonham Carter)가 맡았습니다.
이 영화는 거의 원작과 일치하는 스토리와 흐름을 보여줍니다. 단, 결말 부분이 원작과 판이하게 다릅니다. 원작에서는 자신을 인간이 아닌 괴물로 대하는 세상에 대한 복수에 복수를 하는 과정에서 막 결혼식을 치르고 신혼여행 중인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부인을 목 졸라 죽이는데, 이 영화에서는 더욱 잔혹하게도 빅터가 보는 앞에서 괴물의 그녀의 심장을 꺼내 죽입니다. 영화적인 극적 효과를 노린 것 같아요. 또한, 그녀를 너무나도 사랑했던 빅터는 숨진 엘리자베스를 살리고자 괴물을 만들었던 방법대로 그녀를 소생시킵니다. 바로 이런 끔찍한 모습으로 말이죠. 끝내 그녀도 죽습니다.
이제까지 살펴 본 두 영화 이외에도 '프랑켄슈타인'을 다룬 수 많은 영화와 TV 시리즈물들이 20세기 초부터 현재까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영화 및 TV 프로그램 데이터 베이스인 IMDb에서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을 검색하면 무려 200편의 작품 타이틀이 결과로 나옵니다. 여기에다가 '인조 인간'이라는 주제까지 확장한다면, 더욱 방대한 결과가 나올 것 같습니다. 이처럼 '프랑켄슈타인'이라는 독특한 소재는 1818년 이후 세계의 수 많은 스토리텔러들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이야기를 위한 영감을 주고 있는 것 같네요.
그렇다면, 그 원작 소설은 과연 어떤 내용일까요? 이번 여름 휴가 기간에 메리 W. 셸리의 원작을 읽었습니다. 우선 메리 W. 셸리(Mary W. Shelley, 1797~1851)에 대해 알아볼까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여성이며, 영국에서 태어났고, 소설가, 극작자, 수필가, 전기작가이자 여행작가입니다. 최초의 공상과학소설가로 평가되고 있죠. 아버지는 윌리엄 고드윈(William Godwin)으로 언론인이자 정치철학가이며 무정부주의의 시조 격인 분이고, 어머니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Mary Wollstonecraft)는 여성 인권을 주장한 최초의 페미니스트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남편 퍼시 B. 셸리(Percy B. Shelley)는 시인으로 메리가 '프랑켄슈타인'을 완성시키고 출간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줍니다.
메리 W. 셸리가 '프랑켄슈타인'을 쓰게 된 동기는 원작의 서문에 자세히 나와있습니다. 탁월한 문필가를 부모님으로 둬서 어릴 적부터 글쓰기를 즐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더욱이 남편도 이런 문필가 집안의 아내를 문학적으로 성공할 수 있도록 격려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메리의 남편 퍼시는 메리의 원고를 직접 교정하고 출판사에 보냈고, 몇몇 출판사의 거절 끝에 드디어 출판에 성공합니다.
1816년 여름 남편과 함께 스위스를 방문한 메리 셸리는 우연히 영국이 낳은 위대한 시인인 바이런 경(Baron Byron)과 이웃에서 지내게 되었답니다. 어느 날 바이런 경이 '각자 괴담을 써보자'는 독특한 제안을 하였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프랑켄슈타인'이라는 불후의 작품에 대한 구상을 하게 되었죠. 처음에는 몇 쪽짜리 단편이었는데, 남편의 독려로 아이디어를 발전시킵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있는데요. 일반적으로 '프랑켄슈타인'이라고 할 때, 과학 기술이 가져올 재앙에 초점이 맞춰 있는 것이 일반적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원작의 서문에 의하면, 공포, 괴기 그 자체를 효과적으로 끌어내기 위한 도구로서 당시 급속도로 발달하는 과학기술이라는 재료를 가미한 것이라 볼 수 있겠죠.
메리 W.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은 이중 액자 소설이라는 매우 독특한 구조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소설의 시작은 로버트 월튼이라는 탐험가가 누이에게 보내는 편지로 시작합니다. 사실 상 전체 이야기가 그가 누이에게 보낸 수 많은 편지라고 할 수 있겠네요.
18세기말 유럽에서 성행했던 미지의 세계 탐험 붐에 힘입어 북국해를 탐험하던 그는 뭔가를 쫓고 있는 빅터 프랑켄슈타인을 만나게 됩니다. 극한 추위와 피곤에 지쳐있는 그를 구해주고 월튼은 빅터를 친구로 삼게 됩니다. 빅터는 자신이 여기까지 오게 된 경위를 월튼에게 이야기해주는데, 그 이야기 전체가 실질적인 '프랑켄슈타인'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빅터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자신이 어떻게 소위 '괴물'을 창조하게 되었고, 그 괴물로 인해 어떤 시련을 겪었으며, 그 괴물을 파괴하기 위해 괴물을 쫓고 있다는 것이 주요 내용입니다. 그가 만든 괴물은 그로부터 도망쳤고 우연한 기회에 빅터와 만나게 되는데, 괴물이 그 간 겪은 이야기를 빅터에게 들려줍니다. 좀 복잡한가요? 이런 이중 액자 구조를 그림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소설 '프랑켄슈타인(1818)'의 이야기 구조: 이중 액자 구조
소설의 전체적인 내용은 이렇습니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스위스 제네바의 명문가 출신입니다. 부모님은 두 분 모두 성품이 좋고 서로 지극 사랑하십니다. 빅터가 어렸을 적에 엘리자베스라는 불쌍한 소녀를 양녀로 들이게 됩니다. 후에 이들은 서로 사랑하게 되고, 훗날 결혼하죠.
한편, 빅터는 우연히 연금술에 심취하게 되고, 집 근처 떡갈나무가 번개를 맞고 완전히 파괴되는 것을 보고, 전기와 생명 현상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이어서, 독일의 잉골슈타트로 유학을 떠납니다. 거기서 화학과 교수인 발트만 교수의 인상적인 강의에 매료되고, 시체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갖게 되죠. 오랜 시간, 정신과 육체가 피폐해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연구에 매달린 결과, 드디어 시체들의 조각으로 만든 생명체를 완성합니다.
여기서 잠깐!
원작 소설에서는 영화에서처럼 시체를 연구실 꼭대기로 끌어올리고, 번개의 강한 전기를 이용하여 시체에 생명을 불어 넣는 내용은 없습니다. 영화에서 극적 효과를 노리기 위해 집어 넣은 장치인 셈이죠. 앞에서 언급한 1931년 작 '프랑켄슈타인'이 그 효시라 할 수 있겠습니다.
빅터가 창조한 생명체 '괴물'은 빅터의 연구실로부터 도망가서 행방불명이 됩니다. 그 후 빅터는 잉골스타트로 온 절친 앙리 클레르발의 간호로 기력을 회복합니다. 그런데, 고향으로부터 비보를 접합니다. 빅터의 양동생 윌리엄이 살해되었다는 겁니다. 빅터는 정황을 볼 때, 바로 괴물의 소행임을 간파하고, 고향으로 향합니다. 한편 윌리엄 살해의 용의자로 엉뚱하게도 양동생인 저스틴이 지목되고, 끝내 교수형에 처해집니다. 연이은 충격에 빅터는 점점 폐인이 되어가죠.
그러던 어느 날 알프스 여행 중인 빅터는 괴물과 우연인지, 필연인지 만나게 됩니다. 괴물은 그간 지내온 이야기들을 빅터에게 장황하게 합니다. 그 이야기만으로도 하나의 소설이 될 수 있겠네요.
괴물은 우연히 필릭스라는 도망자 가족의 숲 속 오두막에 당도하여 숨어서 그들 가족의 삶을 통해 인간 세상에 대해 알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글을 스스로 깨우치고 책도 읽게 되죠. 그러나, 어느 날 필릭스의 눈 먼 아버지를 직접 만나게 되고, 자신도 인간임을 확인하려는 순간, 필릭스에게 발각되고, 괴물은 다시 숲 속으로 도망갑니다. 다시 돌아와보니 필릭스 가족은 위협을 느꼈는지 어디론가 떠나고 없습니다. 괴물은 외모로만 자신을 판단하는 인간들을 복수하기로 결심합니다.
여기서 잠깐!
원작 소설에서는 괴물은 방황의 시간 동안 인간의 언어를 습득하고, 책도 읽어 지적인 능력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킵니다. '프랑켄슈타인'을 다룬 그 어떤 영화에서도 묘사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1994년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에 잠깐 나오기는 합니다만, 글을 읽는 수준 정도였죠.
원작 소설에는 이 괴물이 읽은 고전 세 권이 나옵니다. "이 보물을 얻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르오."라고 말하기까지 합니다. 어떤 고전일까요? 아마 깜짝 놀라실 겁니다. 밀턴의 '실락원',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그리고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입니다. 대단하죠?
이후, 괴물은 자신의 옷에 있었던 빅터 고향의 주소를 보고, 무작정 제네바로 향합니다. 그 과정에서 윌리엄을 우발적으로 살해하게 되죠. 그리고는 복수의 차원에서 살해 증거를 저스틴의 주머니에 넣습니다.
괴물은 이야기를 마치며, 빅터에게 애원합니다. 자신과 같은 여성 괴물을 만들어 달라고, 그러면, 이 세상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서로 의지하고, 사랑하며 조용이 살겠노라고 말이죠. 빅터는 일단 승낙합니다. 더 이상 재앙이 커지기를 원치 않은 것이죠. 그런데, 마음이 바뀝니다. 이를 알아챈 괴물은 빅터를 향한 마지막 복수를 감행합니다. 그 과정에서 빅터의 절친인 앙리 클레르발과 자신의 아내인 엘리자베스를 괴물에게 잃고, 빅터의 아버지도 몸져누우셨다가 끝내 세상을 떠납니다.
이제 빅터와 괴물만 남았습니다. 끝나지 않는 추격전은 북극해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이야기의 서두에 언급한 로버트 월튼 선장을 만나게 된 겁니다. 이야기를 마무리한 후 빅터는 월튼에게 자신이 죽어도 괴물을 꼭 처치해달라고 부탁하고 끝내 세상을 떠납니다. 그 후 괴물이 월튼의 배에 잡혀 들어오고, 죽은 빅터를 스스로 화장하여 죽겠다며, 배 근처 얼음장 위로 뛰어내리고 어둠 속으로 사라지며 이야기가 마무리됩니다.
이와 같은 원작의 스토리가 수 백, 수 천의 기상천외한 이야기들로 변주되어 반복되며, 오늘날까지 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진정한 고전이란 이런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새삼 듭니다.
'프랑켄슈타인'을 보고 읽으면서 과학 기술의 부작용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더욱이, 과학기술의 비약적인 발전과 이에 따른 인류의 넘치는 자신감이 궁극에는 인류 자체를 위협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조심스런 걱정도 해 봅니다. 그렇다고 과거로 회귀하는 것은 더욱 어렵겠죠. 결코 쉽지 않은 담론입니다.
▲ Technology has exceeded our humanity
더욱 근본적으로는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자 하는 인간의 끊임없고 무한한 욕망은 그것이 가져올 수 있는 부작용을 미리 생각하고 대비하게 하는데 태생적인 한계를 갖고 있는 것을 아닐까요? 이런 욕망을 억제하기 위한 노력도 중요하지만, 어쩌면, 현실적으로 그런 부작용이 발생했을 때, 그 문제를 정확히 인식하고, 지혜롭게 해결하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다음 회 예고: 공상 과학 소설의 태두 쥘 배른의 '80일간의 세계 일주'를 다루겠습니다. 1956년에 처음 영화로 만들어졌고, 최근에는 2004년에 성룡이 주연한 영화가 현대적 감각으로 제작되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