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퓰리처 상을 수상한 작품 ‘수단 아이를 기다리는 게임’을 아시나요?
굶주림으로 지친 아이가 주저앉아 울음을 터드리는 모습을 담은 이 사진 안에는, 두 가지 시선이 존재합니다. 아이의 죽음을 기다리는 독수리의 시선과 렌즈가 향하는 작가의 시선입니다. 이러한 시선의 강렬한 대비를 통해 기아의 참혹함을 세상에 알리고, 수단에 수많은 경제적 지원의 단초가 된 이 작품 이면에는 또 다른 시선이 나타나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비극적 상황을 그저 담아두기만 했던 작가에 대한분노의 시선입니다.
이 작품을 탄생시킨 33살의 젊은 사진작가 ’케빈카터’는 1994년 퓰리처 상을 수상한 그 해, 결국 그를 향한 수많은 비난의 시선 속에 자살을 선택하게 됩니다. 이 안타까운 이야기는 시선이 가지고 있는 힘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그것이 어떤 이들에게는 얼마나 큰 고통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 볼 수 있습니다. 시선이 무서운 점은, 그것이 곧 경계 짓기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경계 짓기의 시선은 우리 사회에 곳곳에서 나타나며, 특히 우리가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장소에서조차 무의식 중에 발생하는 일입니다.따라서 이러한 경계 짓기에 대한 고민은 지속적으로 사회공헌활동에 참여하는 한화인들 뿐만이 아닌, 일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한번쯤은 생각해볼 문제 아닐까요?
지난 10월 저는 한화 사회공헌활동의 일환으로 교남소망의 집의 친구들과 1박 2일 춘하추동 캠프를 다녀왔습니다. 교남소망의 집은 신체적, 정신적으로 불편함을 겪는 친구들에게 교육 및 사회 활동의 기회를 제공하는 시설입니다. 한화는 교남소망의 집에 재정적 지원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프로그램에 정기적으로 직원들을 참여하도록 하여 실질적인 봉사활동이 이루어질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번 캠프를 다녀오면서 제가 느낀 바는 사실 마냥 뿌듯한 감정보다는 봉사활동을 통해 갖게 된 친구들과의 관계에 대한 성찰이 더 큽니다. 그것은 서두에서 짚어본 왜곡된 시선이라는 문제에서 저 역시 벗어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입니다.
왜곡된 시선의 주된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고정관념은, 사실 인간이 사회화 과정을 거치면서 학습한 사회활동의 도구입니다. 실제로 고정관념 없이 매번 새로이 사물과 관계를 인식하려 한다면 정상적인 사회활동은 어렵습니다. 순간 순간의 의사결정과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고정관념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무 이것에 의존한 나머지, 편견이 발생하게 되는 시점에 이르면 시선의 왜곡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이번 캠프에서 알게 모르게 저 역시 교남 소망의 집의 친구들을 이러한 편견을 통해 바라보았습니다. 또한 그런 시선으로 바탕으로 나온 행동이 친구들에게는 오히려 불편함과 언짢음으로 다가갈 수 있다는 것 역시 느꼈습니다. 친구들의 외모나 언어에서 느껴지는 낯설음에서 제가 ‘정상’의 범주에 있다는 착각 아닌 착각을 한 것입니다. 오히려 ‘정상’이라고 믿었던 제 스스로보다도 감정에 솔직하고 삶의 현재에 충실한 친구들의 모습은, 가까워질수록 저를 돌아볼 수 있었고 세상의 모습이 정상이고 그 외의 모습은 비정상이라는 편협한 시선의경계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었습니다.
사진 속의 풍경처럼, 자연 앞에서 한데 어울려 뛰노는 봉사자들과 친구들의 모습은, 모두 같은 사람일 뿐 아무런 차이를 느낄 수 없습니다. 우리 사회에 왜곡된 시선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 현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변화할 수 있음 깨닫고, 올바른 시선을 견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이러한 현실의 경계를 허무는 것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한화 봉사단 역시 지속적인 봉사 활동을 통해 이러한 깨달음들을 나누고 이해함으로써 우리 사회에 더욱 공헌할 수 있도록 앞장서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