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고 습한 여름이 되면 우리가 가장 먼저 찾게 되는 전자제품이 있습니다. 바로 ‘에어컨’인데요. 지금은 각 가정뿐만 아니라 대형건물이나 상업 공장, 움직이는 자동차와 비행기, 선박 등 온도 유지와 쾌적한 환경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에어컨이 설치돼 있습니다.
에어컨은 습도가 높은 동남아시아의 도시발전에 기여하고, 폭염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한 최고의 발명품으로 손꼽히고 있는데요. 이 천재적인 발명품을 만든 사람은 25세의 젊은 청년 '윌리스 캐리어'입니다. 이렇게 위대한 발명품을 만들어 낸 것은 우연이었을까요?
오늘날 최고의 발명가로 인정받고 있는 ‘윌리스 캐리어’가 어떻게 혁신적인 발명품을 만들게 되었는지,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문제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 준 어머니의 솔루션
윌리스 캐리어(Willis Haviland Carrier)는 1876년 11월 26일 뉴욕 앙골라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평범한 농부로 농사일을 했고, 어머니는 집안일을 했습니다. 또한 어머니는 집안일을 하면서 시계나 재봉틀, 가재도구 등을 모두 도맡아 수리하였는데요. 이 모습을 본 윌리스도 어릴 때부터 작은 기계들을 고치고 조립하는 것을 즐겼다고 합니다.
윌리스가 9살이 되었을 때에도 어머니의 영향은 계속되었습니다. 수학의 분수 개념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던 윌리스에게 어머니는 사과 한 접시를 가져오라고 하였고, 그 사과를 1/2, 1/4, 1/8 등분으로 자른 후 사과 조각으로 더하고 빼는 것을 직접 보여주었습니다. 이러한 어머니의 가르침으로 윌리스는 분수 개념을 완벽히 이해했고, 다른 수학 문제들도 자신 있게 풀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수학 문제에 대해 단순하고 쉽게 접근하는 방식을 가르쳐 준 어머니 덕분에 윌리스는 밤을 새우며 수학 문제를 푸는 데 몰두하는 등 수학에 깊은 흥미를 갖게 됩니다. 공부 외에도 ‘스스로 알아서 하라’는 어머니의 조언에 따라 대학교 재학 중에도 장학금을 받으며 우유 배달, 강의 등 아르바이트를 했고, 친구들과 함께 미국 최초로 '세탁 대행업'을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어머니의 현명한 문제 해결 방식은 윌리스가 수학적인 재능뿐만 아니라 독립적인 사람으로 자라나도록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비효율적인 시스템을 도전으로 받아들이다!
윌리스는 대학 졸업 후 뉴욕 버팔로에 있는 ‘버팔로 포지 컴퍼니’에 엔지니어로 들어갔습니다. 이곳은 난방, 건조 및 통풍 시스템을 제작하는 회사였습니다. 당시 엔지니어들은 기계가 작동하는 방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설계에 있어서 비효율적인 부분이 많았고, 윌리스는 이 비효율적인 문제들을 도전적으로 받아들여 연구 끝에 '기계적 초안'이라는 논문을 써냈습니다.
윌리스의 재능을 알아챈 회사는 그에게 필요한 모든 기술과 이론적 자원을 제공하고, 그가 연구에 몰두할 수 있도록 지원했습니다. 그렇게 윌리스는 버팔로 조지 컴퍼니에서 세계 최초의 HVAC(난방, 환기, 공조) 산업 개발 연구소를 설립하였고, 당시 그의 나이는 겨우 25세였습니다.
세계 최초의 에어컨 시스템의 탄생
윌리스가 처음으로 맡은 업무는 인쇄 회사에서 의뢰한 일이었습니다. 당시 인쇄 공장은 습도가 높아 수분의 양에 따라 종이가 팽창하거나 수축하여 사이즈가 제각각이었고, 컬러마저 일정하지 않아 인쇄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윌리스는 이 문제 또한 도전적으로 받아들여 바로 문제 해결에 착수하였는데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많은 테스트와 실험을 하였고, 이를 통해 얻은 데이터를 방정식, 표, 그래프로 변환하며 지정된 온도와 습도를 냉각하고 제습하는 등 필요한 냉각수의 유량과 온도, 코일을 통과하는 유량을 도표화하였습니다.
1902년 7월 17일, 냉수와 코일의 유속을 나타내는 차트가 공식적으로 발표되었고, 이것이 바로 세계 최초 공기조화 시스템인 ‘에어컨’이었습니다.
첫 번째 위기, 세계대전의 발발
1914년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윌리스는 7명의 동료들과 함께 뉴욕에 ‘캐리어 엔지니어링 코퍼레이션’을 설립한 후 당시 사용되던 냉동 기계의 문제점을 연구해 성능과 비용 측면에서 간단하고 효과적인 냉동기를 개발합니다. 최초의 원심분리기 또는 냉각기라 불리는 이 기계는 상업용 기계로, 섬유공장, 사탕공장 및 제약 연구소 등 광범위하게 사용됐습니다.
'캐리어 에어컨'은 쇼핑센터와 영화관, 미 해군 구축함 기관실, 고층 빌딩과 국립 방송센터, 백화점 등에 설치됐으며, 1928년 브라질에서는 광부들의 작업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금광에 원심분리기를 설치하였습니다.
이후 에어컨의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캐리어 에어컨' 사무소도 시드니, 파리, 봄베이, 요하네스버그, 슈투트가르트 등 세계적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세계대전이라는 위기가 닥쳤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연구와 개발에 투자하여 비효율적인 문제들을 도전적으로 해결해나아간 윌리스. 위기를 기회로 삼은 성공의 표본으로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위기, 대공황
위기는 끝이 아니었습니다. 1929년 10월, 검은 목요일이라 불린 세계 대공황이 시작됐습니다. 이 불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혁신에 대한 집중을 유지해야 된다고 생각한 윌리스는 문제에 대한 걱정은 미루고, 불리한 상황을 면밀히 연구하기 시작합니다.
윌리스는 유닛 히터를 생산하는 회사와 합병하여 엔지니어링과 전문성을 갖춰 새롭게 무장합니다. 새로운 슬로건 ‘Weathermakers to the World’를 바탕으로 철도 객차 냉각을 연구해 열차 냉각을 위한 새로운 증기를 고안하게 되는데, 고안 끝에 증기를 이용해 물을 식힐 수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후 회사는 빠르게 성장하여 대형 크루즈선과 병원, 호텔, 고층 빌딩 등에도 진출하게 됩니다.
윌리스는 ‘걱정은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결정력을 잃게 한다’며, ‘최악의 상황을 직시하고 정신적으로 받아들이면 문제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고 전했습니다.
미국 최고의 발명가, 윌리스 캐리어
윌리스는 1950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평생 동안 연구개발을 지속했으며, 엔지니어링 분야에서 수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1934년 미국기계학회(ASME)는 최고 상인 ASME 메달을 수여했으며, 공학 및 기술 역사 연구 분야에서 가장 오래된 학회인 ‘뉴코멘 소사이어티’는 1949년 그를 ‘에어컨 시스템의 아버지’로 추대했습니다.
또한 미국 난방, 냉동 및 공조 엔지니어 학회(ASHRE)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1998년 타임지가 선정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선정되었습니다.
전 세계 과학자들에게 영감을 주다
에어컨은 더위로 인한 사망률을 40%나 줄여주었으며, 대만, 홍콩, 싱가포르, 마카오, 동남아, 아프리카 등 고온다습한 지역을 오늘날 대도시로 성장할 수 있게 했습니다. 한 젊은 엔지니어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발명품은 도시와 상업 발달에 기여하여 인류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와도 현명한 솔루션을 세우기 위해 도전적으로 연구한 윌리스 캐리어. 그에게는 흔들리지 않은 집중력과 예리한 선견지명이 있었습니다. 또한 연구에 그치지 않고, 현장에서 불편함을 개선하기 위해 끊임없이 혁신하고 새로운 기술과 제품을 만들어 전 세계에 보급시킨 그의 실용적인 면모는 오늘날의 과학자들과 발명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