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찾아온 많은 외국 관광객들이 뷰티불이라는 탄성을 지르는 곳! 바로 경복궁입니다. 여러분께서도 물론 고궁에 방문해보신 적 있을 겁니다. 저도 서울에 있는 궁을 낮에 몇 번씩 갔다오기도 했어요. 그런데 어둠이 내린 후에는 어떨까요? 이제껏 문화재 보존을 이유로 야간의 고궁 개방은 덕수궁을 제외하면 거의 없었습니다. 충분한 관리와 보존을 거쳐 야간에도 궁을 개방하게 된 것인데요, 실제로 관광객들의 발걸음도 굉장히 많이 늘었습니다! 제가 경복궁의 밤을 여러분에게 멋진 사진과 스토리로 알려드릴 텐데요! 그 전에 어떻게 경복궁에 입장할 수 있는지부터 한번 알아볼까요?
경복궁 야간개장 #4차 개장
경복궁 3차 야간개장은 지난달 19일에 끝이 났습니다. 아쉽게도 3차 개장을 놓치신 분들은 아직 4차 개장이 남아 있어요! 4차 개장 일정은 9/24일부터 10/28일까지이고, 예매는 보통 개장 시작일보다 열흘 정도 빨리 진행됩니다. 미리 공지되니 예매 일정에 촉을 세우고 계셔야 해요. 티켓 가격은 3,000원이고 옥션과 인터파크에서 오픈하는데 각각 1,200장, 1,000장입니다. 사실 200장 차이이기 때문에 한쪽으로 사람이 몰리면 성공할 확률이 비슷하게 떨어지니 그저 광클만이 답이에요! 단, 예매하지 않아도 한복을 입으면 무료로 입장할 수 있습니다. 요즘 한복이 예쁘게 나오기 때문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대여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한복 대여가격은 시간에 따라 상이하지만 일반적으로 2시간 10,000원, 4시간 15,000원, 종일 25,000원 정도에 형성되고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단 한복을 입으셨더라도 개장 전에 미리 가서 기다려야 합니다. 입장 대기 줄이 상당히 길게 늘어서기 때문에 기다리지 않고 바로 들어가려면 줄을 서 있는 것이 좋아요. 3차 개장의 경우 19:30분 입장이기 때문에 티켓 교환처에서 18:50분 정도에 가 있으면 오픈하자마자 티켓을 교환하고 흥례문 앞에 줄을 서시면 됩니다. 여유 있게 들어가셔도 상관없어요! 22시에 폐장하기까지 궁을 관람할 시간은 충분하답니다. 물론 야간에는 개장 범위가 있습니다. 경복궁 전체가 야간에 개방되지는 않아요. 광화문부터 흥례문, 근정전, 사정전, 강녕전, 교태전, 경회루 권역까지만 개방됩니다. 아쉽게도 향원정과 건청궁은 개방하지 않습니다. 관람 동선이 짧아 아쉽기도 하지만 경복궁의 주요 권역은 대부분 둘러볼 수 있는 범위입니다. 자, 이제 경복궁을 만나볼까요?
빛나는 복을 비는 궁 #경복궁
한양 도성은 풍수지리상 한국에서 가장 길한 위치에 있습니다. 무학대사와 하륜의 의견 일치를 받아낸 것 역시 이런 이유에서였죠. 도성은 현재 서울의 중구 지역을 둘러싸고 있으며 외천으로 한강, 내천으로 청계천, 주산으로 백악과 남쪽의 남산을 가지고 있는 최고의 길지입니다. 단 한강의 수기(水氣)를 남산이 가로막아 경복궁에 화기(火氣)가 충천하다는 지적과 화산(火山)인 관악산의 위치가 좋지 않다는 설이 있었죠. 실제로 경복궁은 복원하면 불타 없어지고, 중건하면 화마가 덮쳐 대부분의 전각이 손실되는 등 불에 계속 시달려 왔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 도성의 사대문을 지을 때 풍수적인 묘수를 뒀는데요. 여러분들은 숭례문이 불에 탈 때 양녕대군이 썼다는 현판이 떨어지는 모습을 가슴 아프게 지켜본 적 있으실 겁니다. 오상(五常)의 인의예지신을 돌림자로 써 이름 붙인 한양의 600년 정문은 그렇게 불탔습니다. 그런데 현판이 다른 대문과 다르게 세로로 쓰여 있었죠? 숭(崇)은 불꽃이 위로 타는 모양이고 례(禮)는 오행에서 불을 뜻합니다. 따라서 두 글자를 세로로 겹치면 염(炎)의 형상이 되어 불이 세차게 타오르는 풍수적 조치가 됩니다. 남산이 가로막아 수기가 부족한 경복궁을 남쪽의 정문으로 막아 세운 것입니다.
게다가 경복궁이 조선의 법궁으로 제 역할을 한 시간은 채 100년이 될까 말까 합니다. 바로 위 사진은 덕수궁의 석조전인데요, 오히려 경운궁과 창덕궁이 조선의 법궁으로 쓰였던 시간이 굉장히 깁니다. 경복궁은 걸핏하면 불에 타서 전각이 소실되거나, 외적의 침략으로 불타 왕들이 머물기 싫어했죠. 실제로 문화재청에서 경복궁 개장 시 가장 신경을 많이 쓴 것이 화재 예방입니다. 전각별로 소화기가 비치되어 있는 것은 물론 화기를 가까이하지도 않아요. 여러분께서도 경복궁 관람 시에는 화기를 가져가지 않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소중한 우리의 문화재를 보호해야죠!
세월의 풍파를 고스란히 간직한 #광화문
광화문은 경복궁 야간개장 티켓을 교환하기 위해 가장 먼저 들어서는 문입니다. 옛 육조거리였던 세종로를 지나 임금만이 통행할 수 있었던 닫힌 가운데 문을 피해 왼쪽이나 오른쪽 문으로 들어갈 수 있죠. 광화문과 흥례문 사이에는 넓은 공간이 있어 굳이 경복궁에 입장하지 않더라도 이곳에서 즐거운 산책을 할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이곳에 조선총독부 건물이 있었고, 그 식민통치의 잔재를 헐어 버린 것도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조선총독부 건물의 시야를 방해한다 하여 광화문은 옆으로 비켜나야 했고 남산에 지은 일본 신궁을 바라보도록 원래의 각도에서 5.6도를 틀어서 만들어 놓기도 했습니다. 잘못된 복원으로 인해 복원되고 나서도 다시 헐린 후 옆으로 원래 자리를 찾아 이동하기까지 광화문은 오랜 세월을 시달려 왔습니다.
하지만 광화문은 당당한 그 자태만으로도 조선의 법궁의 정문임을 자랑하죠. 중앙에 홍예문을 세 개나 터서 품격을 높였고, 석축을 높게 쌓은 성곽문과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단적인 예로 창경궁의 홍화문, 창덕궁의 돈화문을 비교해 보면 됩니다. 광화문의 중앙 홍예문을 기준으로 경복궁은 완벽한 좌우대칭을 이루었죠. 양옆에는 두 십자각을 두어 문을 호위하도록 했습니다. 지금의 삼청동길로 들어가다 보면 동십자각이 도로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서십자각은 전찻길을 내다 헐렸습니다.
예를 널리 펴는 중문 #흥례문
낮에 본 흥례문입니다. 근정문과 광화문 사이에 위치한 중문으로 다른 궁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형태입니다. 예를 널리 편다는 뜻으로 세종 8년에 홍례문(弘禮門)이라 했지만 흥선대원군이 중창할 때 건륭제의 이름이 홍력인지라 글자를 피해 흥례문으로 바꾸었습니다. 행각에는 국왕을 시위하는 병기와 군사 훈련 담당처 등 내병조 소속의 관아를 배치했죠. 이 문을 지나면 백악에서 끌어온 물길이 지나가던 터가 남아 있는데, 이 물은 서쪽으로 들어와서 동쪽으로 나가는 명당수의 효과를 가져요.
이제 해가 조금씩 지고 있군요. 흥례문을 통과할 때쯤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합니다. 근정문으로 가다 보면 가운데에 높게 조성된 길이 하나 보입니다. 이 길이 바로 어가가 지나던 임금의 길입니다. 관리나 군민이 이유 없이 영제교를 건너거나 어도로 통행하면 장 80대 이상의 무거운 형벌을 내렸다고 해요! 또한 이 어도는 양옆으로 일월, 문무, 춘추 등이 배치된 기준이 되기도 해요.
임금의 부지런함이 곧 정치의 으뜸이다. #근정전
낮에 올려다본 근정전입니다. 가끔 자금성과 경복궁을 비교하며 경복궁의 아름다움을 자금성에 못 미친다고 평가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근정문을 지나 근정전을 한번 바라보세요. 옛 신하들이 시립했던 어도 양옆의 비석에서 근정전을 보면, 근정전의 처마가 주산인 백악의 곡선을 따라 멋들어지게 휘어진 모습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옛날에 조선의 중심이자 경복궁의 핵심에 들어오고자 하는 유생들이 꿈에서라도 보고 싶어했던 곳이죠. 각종 외교 행사와 왕의 즉위식, 알현식이 모두 이곳에서 열렸습니다. 세자가 왕위에 오르는 것을 등극이라고 해요. 북극성에 오른다는 뜻입니다. 하늘 중심의 북극성은 다른 별들의 호위를 받으며 사계절을 바로잡는 역할을 한다고 전해져 오기 때문에 왕을 북극성과 같은 존재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조선 전기의 정종, 세종, 단종, 세조, 성종, 중종, 명종, 선조의 8분의 임금이 근정문에서 즉위하고 근정전에서 하례를 받았습니다.
이제 근정전에 완벽한 노을과 푸른빛이 깔리기 시작합니다. 야간개장의 서막이자 하늘을 붉게 물들여가는 석양이 옛 왕들의 영광과 광휘를 비추는 듯합니다. 서쪽의 인왕산이 근정전의 옆을 부드럽게 감싸고, 주산인 백악의 호랑이와도 같은 마루는 근정전을 타고 응봉으로 흐릅니다. 근정전 바로 밑에서 서까래를 보자면 그저 감탄만 할 뿐이죠. 이렇게 치밀하게 서까래를 배열하여 완벽한 곡선의 처마를 만든 것입니다. 아래에서 보면 서까래의 위아래와 머리의 위치가 모두 달라요. 행각과 기단을 네모지게 조각하여 근정전의 기틀을 마련한 것은 곧 땅이 네모지다는 것이고, 처마를 둥글게 그려낸 것은 하늘은 원이라는 것입니다. 천원지방의 인식이 잘 녹아들어 있는 궁 건축의 정점을 바라봅니다. 일본과 중국의 경우에는 서까래와 추녀가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고 있지 않죠. 군산 동국사를 보시면 오히려 처마가 땅을 향해 내리꽂히는 듯한 느낌이 납니다.
화려하고도 장엄한 근정전 내부입니다. 어탑 위에는 국새와 의장물이, 어좌 뒤에는 임금을 상징하는 일월오악도가 그려져 있습니다. 일월오악도의 의미를 자세히 알아볼까요. 해와 달은 끊임없이 순환하며 뜨고 지는 과정을 반복합니다. 결국 생성-변화-소멸의 음양구도까지도 담고 있는 우주의 도리를 상징하는 것인데요. 임금 역시 하늘의 도를 따르며 부지런히 민심을 살펴 태평성대를 이루라는 뜻입니다. 오악은 한국인에게 가장 친숙한 산봉우리를 형상화했죠. 옛날 학창시절 교가 기억나시나요? 대부분 교가에 “~산의 정기 받아”라는 구절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죠? 또 우리나라 설화나 신화를 보면 대부분 ‘산신령’이 등장하잖아요. 중국은 우리와 다르게 땅을 더 높이 쳤죠. 서유기에 가장 자주 나오는 게 토지신이에요. 이렇듯 평야가 많은 나라와 산악지대가 많은 국가의 성향이 다릅니다. 조선은 백두산/금강산/묘향산/지리산/삼각산에 산단을 만들고 나라의 이름으로 봄/가을에 제사를 지냈죠. 좀 더 아래를 보면 오악에서 폭포가 내려와 바다를 이루고 있는데, 바다의 파도는 산수복해라는 동양의 길상 관념에서 나온 것으로 복을 상징합니다. 소나무 숲과 두 줄기 폭포는 곧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아니하고,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아니 그쳐 내를 이뤄 바다로 갑니다’라는 용비어천가의 한 구절과 일맥상통합니다.
하지만 가장 웅장한 것은 바로 천장의 칠조룡(발톱이 7개인 용)이죠. 오색구름 속에 한 쌍의 황룡이 자리 잡은 칠조룡의 둘레는 옥색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황룡은 오행에서 청룡, 백호, 주작, 현무 등 사방신의 정점이며 방위신의 중심이에요. 대표적인 예로 창덕궁의 인정전과 창경궁의 명정전에는 봉황이 조각되어 있지만, 황제궁인 경운궁(덕수궁) 중화전과 경희궁 숭정전, 근정전에는 황룡이 승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화전의 황룡은 뚱뚱한 오조룡이고 경희궁의 황룡은 칠조룡이지만 약해 보입니다. 오직 근정전의 칠조룡만이 당당한 모습을 자랑하죠. 문제는 경복궁 창건 당시 칠조룡이 조각되었느냐, 그것은 아직 확실치 않습니다. 일각에서는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 청나라의 영향에서 벗어나 자주 왕권을 천명하고자 칠조룡을 새겼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당백전을 발행하면서까지 어렵게 지은 경복궁에 이러한 화려한 장식물을 만든 것에 대해서는 일말의 아쉬움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왕과 왕비의 보다 사적인 공간 #사정전 뒤 권역
이곳부터는 사람들이 적어집니다. 야간개장 관람객들은 대부분 경회루와 근정전 주변에서 돌아다녀요. 왕의 집무실이었던 사정전과 침전이었던 강녕전, 중전의 침전이었던 교태전은 낮에도 사람이 많지 않지만, 밤에는 더욱 고즈넉합니다. 밤 다과상을 소반에 받쳐 든 궁녀들이 모퉁이에서 돌아 나올 듯한 풍경입니다. 밤의 조용한 경복궁을 즐기고 싶다면 사정전 권역으로 가는 것을 추천합니다. 물론 이 앞마당에서 이렇게 평온한 일만 벌어지지는 않았어요.
사정전은 임금이 경연에 참석하고 신하들과 조회를 펼치던 공간입니다. 그만큼 임금의 일상과 통치생활에 가장 가까운 공간이었죠. 공식적인 공간인 만큼 온돌조차 없었습니다. 정전의 뜰에도 품계석이 있지만 편전 내부에도 품계에 따라 앉을 수 있는 공간이 달랐어요. 특히 임금에게 업무를 보고하거나 진언을 올릴 때 임금 쪽을 바라보지 못하게 한 규정이 특이합니다. 허락 없이 임금을 바라보며 말을 했다가는 불경죄에 처해지기 십상이었죠. 대표적으로 선조 때 반란으로 유명했던 정여립이 홍문관 수찬일 때 임금을 바로 쳐다보았다 하여 파면된 예가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사실 역시 편전 한쪽에 입회한 사관에 의해 모두 기록되었습니다. 뜰에서는 잔치를 베풀기도 하고, 외국으로 사진을 보낼 때 환송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지금 관광객들이 거니는 곳은 계유정난 때 사육신이 세조에게 처참한 고문을 받으며 죽어간 곳이기도 합니다. 조광조는 주초위왕 사건으로 기묘사화의 주범이 되어 이 마당에서 중종에게 친국을 받은 후 유배를 가기도 했어요.
사정전 내부의 공간입니다.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칠조룡과 비슷한 운룡도에요. 조각이 아닌 그림입니다. 임금을 상징하는 쌍룡이 구름과 함께 노니고 있어요. 성인이나 영웅을 보좌하는 주변 인물을 상징하는 겁니다. 임금 역시 뛰어난 신하의 도움을 받아야 어진 성군이 될 수 있다는 유교적 믿음을 보여주는 거죠. 옛날에는 세자는 동쪽, 당상관은 서쪽에 앉아 있었습니다. 임금이 어좌에 앉으면 승지들이 현안과 업무를 보고했어요. 대부분의 사극에 나오는 임금의 편전은 모두 사정전의 형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만찬과 연회의 연못 위 누각 #경회루
낮에 본 경회루도 아름답습니다. 야간개장 관람 시 경회루로 가려면 수정전을 거쳐야 합니다. 수정전에서는 국악 공연이 펼쳐지기도 하니 우리 문화를 즐기고 싶으신 분들은 수정전 앞마당에 자리를 잡으세요! 자그마한 카페도 있어 여름밤의 열기를 식히기에 좋습니다. 수정전은 예전 갑오개혁 때 군국기무처가 들어서기도 했고, 김홍집 내각도 이곳을 집무실로 썼습니다. 수정전을 지나 뒤쪽으로 조금만 걸어오면 바로 경회루가 보입니다.
경회루는 궁궐 조영의 전통적인 요소를 반영하는 곳입니다. 즉 궁 안에는 영지, 신령스러운 연못과 영대, 임금이 올라가서 사방을 둘러보는 누각이 있어야 하죠. 물론 국가의 멸망에도 한몫을 했습니다. 옛 은나라 주왕은 주지육림을 만들고 옆에 높다란 대를 지었다고 하죠. 주나라 문왕 역시 등극 후에는 올바른 정치 아래 작은 연못을 파고 대를 지었다고 합니다. 우리의 다른 궁궐들 역시 모두 이 이치를 따르고 있는데요, 부여의 백제 남궁지, 경주 안압지, 창덕궁 부용지 등이 이에 해당하죠. 네모진 연못을 파고 섬을 만들어 48개의 기둥을 세운 경회루는 그중에서도 가장 웅장한 규모를 자랑합니다. 지금은 밋밋한 돌기둥이지만 성종 대에는 기둥에 용을 돋을새김하여 용의 그림자가 연못의 연꽃 사이로 헤엄쳤다고 해요.
경회루는 연회가 열리기도 했지만 수많은 역사의 발걸음이 자리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옛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옥새를 넘겨주었던 곳이 바로 경회루입니다. 계유정난을 기점으로 조선의 왕권은 사촌에게 넘어갔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죠. 세조가 조선의 정치에 기여한 바도 있지만 개인의 야심을 위한 정난으로 조선의 운명은 비틀리고 말았습니다. 이때 수양대군은 옥새를 꿇어 엎드려 울면서 사양했지만, 성삼문이 옥새를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리자 고개를 들고 노려보았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연산군은 가까이서 시중을 드는 기생들의 집단 ‘흥청’들을 거느리고 패덕한 생활을 즐겼죠. 정작 경회루 연못의 물은 경복궁에 난 화재를 진압하는 데에 쓰인 적은 없었습니다.
야간개장은 10시에 종료되고 10분 전에는 궐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지나왔던 문들을 되거치며 흥례문을 지나 광화문을 나서면 다시 현대의 육조거리가 반기죠. 이제 과거에서 돌아올 시간입니다. 한 번쯤 경복궁을 밤에 방문하게 되면 뜻하지 않은 그 시간여행에 한참 생각에 빠지게 되어요. 3차 개장에 경복궁을 방문하시지 못한 분들은 꼭 4차 개장 예매에 성공하여 경복궁을 가보셨으면 합니다. 불빛이 너울거리는 누각의 서까래 밑에서 좋아하는 음악과 함께 고궁의 매력에 빠져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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