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는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지만, 우리가 잘 알지 못하고 있던 석유화학 산업의 전반적인 부분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석유화학산업은 기초 소재 산업으로 산업활동을 하는 데 꼭 필요한 부분이며, 또한 산업 구조상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산업에 석유화학산업이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석유화학산업이 언제부터 인류와 함께 해왔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우리 일상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석유화학산업이 어떤 모습으로 발전해왔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20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석유는 오직 등유, 연료유로만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언제부터 무슨 일 때문에 ‘산업의 쌀’이라는 애칭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여러분도 궁금하시지 않으신가요? 그럼 지금부터 세계 석유화학산업의 모습과 한국 석유화학산업의 모습을 함께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인류는 일상생활과 문화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지고 온 재료를 기준으로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 등 새로운 재료의 등장은 우리의 문명을 발전시키고 일상생활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런 변화를 거쳐 지금 우리는 석유화학산업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산업의 쌀’이라는 표현처럼 석유화학산업은 우리 소지품의 70%를 차지할 만큼 우리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 되었습니다. 지금 앉아 계신 책상에도 석유화학 제품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제는 신체의 일부처럼 느껴지는 핸드폰, 컴퓨터 모니터와 키보드, 돈을 넣고 다니기 위한 지갑, 우리의 발이 되어주는 교통카드, 메모를 하기 위해 올려놓은 필기도구, 눈이 잘 보이지 않아 쓰고 있는 안경 등 이 모든 것들이 다 석유화학제품에서 나온다는 것 알고 계시죠! 그래서 혹자는 현대사회를 석유화학시대라고 정의할 수 있다고도 말합니다. 그럼 도대체 언제부터 석유화학산업이 이렇게 발전하게 된 것일까요?
▲ 1885년 벤츠 페이턴트 모터바겐 (출처: https://en.wikipedia.org/)
석유는 메소포타미아, 터키 등에서 기원전부터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로 오래전부터 우리와 함께 해왔습니다. 초창기에는 석유가 거대산업으로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주로 조명용 연료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1885년 독일의 기술자 G.다임러와 C.F.벤츠가 발명한 자동차 가솔린 엔진과 같은 내연기관이 등장하면서 석유의 소비가 급증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내연기관은 휘발유만 소비할 뿐 중질유의 처리 문제는 지속적으로 발생하였습니다. 이런 중질유의 활용 방법의 모색으로 석유화학제품 탄생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다 제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디젤기관이 두드러지게 발전하면서 석유산업은 큰 폭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근대적인 의미의 석유화학공업은 1925년 유니언 카바이드의 자회사인 카바이드 앤 카본 케미칼이 미국 스탠더드 오일과 공동으로 올레핀 가스를 이용해 이소프로필알코올을 생산하면서 구축되었다고 합니다. 석유화학제품은 단계적으로 개발된 것이 아니라, 시대 상황에 따라 요구되는 물질을 공급해주는 제품이 산발적으로 개발되었습니다. 비행기와 자동차의 수요가 늘어날 때는 도장용 페인트의 용제로써 아세톤이 개발되었고, 천연고무의 공급이 어려울 때는 스티렌부타디엔고무를 개발하여 고무 대용으로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 제2차 세계대전에 등장한 디젤 비행기(출처: https://en.wikipedia.org/)
1940~50년대에는 축적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경제성 있는 원료를 찾는 상업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세계 제2차 세계대전을 맞이하면서, 합성고무, 합성섬유, 합성수지 등 다양한 제품들이 개발되기 시작하였으며, 전쟁 후 다양한 기업들이 양산설비를 갖추고 대량생산을 하기 시작하면서 석유화학산업은 큰 폭으로 성장하기 시작하였습니다. 1970년대부터는 선진국 중심에서 개도국으로 석유화학산업이 확산되면서 다양한 고부가가치 신제품 개발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과거 유럽, 미국, 일본 등이 주도하던 석유화학산업은 이제 중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가 성장의 중심축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으로 산업 활성화(출처: http://www.etnews.com/)
우리나라 석유화학산업의 발전은 정부의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에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1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에서 경공업을 발전시키면서 늘어난 기초소재의 수입을 대체하기 위해 2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에서는 석유화학산업을 정부 주도하에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주었습니다. 이런 정부의 노력으로 경공업 제품들은 대부분 국산화가 되어갔습니다.
▲ 오일쇼크로 인한 석유 파동(출처: http://monthly.chosun.com/)
1970년대에는 울산 석유화학단지가 완공되고, 여수 석유화학단지가 완공되어가면서 국내 석유화학산업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던 중 1차 오일파동을 겪으면서 침체되었던 석유화학산업은 1986년 석유화학육성법이 폐지되면서 투자 자유화로 대규모 설비투자가 이뤄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석유화학산업은 1973년 1차 오일쇼크와 1980년에 발생한 이란과 이라크 전쟁으로 2차 오일쇼크를 경험하며 힘든 시기를 보냈으나, 1983년 유가 하락과 국내외 경기회복에 힘입어 지속적인 투자를 바탕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1990년대 이후부터는 국내 석유화학산업이 수출주도형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국내 수요가 둔화되고 중동과 개도국의 석유화학산업 설비투자가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경쟁력 강화를 위한 다양한 대책 마련이 절실해지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많은 업체들이 통폐합을 통해 대형화를 이루고 있으며, 경쟁 기업 간 교류를 통해 제품 전문화 및 기업 규모의 대형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국내 석유화학산업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1990년대 중국 수출을 목표로 대규모 설비투자를 진행하였습니다. 그로 인해 국내수요 대비 1배 이상의 생산이 가능해졌으며, 공급과잉으로 수출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전체 수출량의 54%를 중국이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중국의 의존도가 높은 편입니다. 또한 국내 석유화학산업은 세계 상위권의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2012년 기준 세계 에틸렌 생산능력이 미국, 중국, 사우디 다음으로 4번째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반면 수출의 비중이 높다 보니 환율, 유가등락과 같은 외부 변수에 큰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석유화학산업의 전반적인 흐름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20세기 이전 석유는 조명으로만 사용하는 연료에 불과하였으나, 제1, 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석유화학산업은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성장했습니다. 특히 국내 석유화학산업은 40년이라는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높은 경제성장으로 인해 국내에 없어서는 안될 중추 산업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석유화학산업은 다양한 기초소재 개발을 통해 우리의 삶의 질을 높여줄 것입니다. 한화케미칼도 여러분들의 삶을 보다 가치있게 변화시켜줄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