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완연한 가을이 왔는지 제법 바람이 서늘해졌어요.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취미 생활을 하기에 딱! 인 계절이기도 하죠. “취미가 어떻게 되세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영화 감상이요!”라고 한치의 고민도 없이 대답하는데요. 특히 사색에 잠기기 좋은 요즘, 영화를 보고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답니다. 날씨뿐만 아니라 요즘 영화가 당기는 이유에는 최근 재미있는 영화가 많이 개봉한 이유도 있는 것 같아요. 올해 들어 천만 영화가 '어벤저스', '암살', '베테랑' 등 총 세 편이나 나왔는데요. 여러분들은 전부 보셨나요? 저는 자칭 영화 마니아인 만큼 전부 보았는데요, 그중 한국 역사를 다룬 '암살'이 가장 재미있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배우들이 나오기도 했지만 요즘 전공보다 더욱 흥미롭게 공부하고 있는 한국사에 관한 내용이라는 점이 제게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답니다.
한국 역대 천만 관객 영화 중에 한국의 역사를 다룬 영화가 총 6편이나 된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저번 달에 개봉한 송강호, 유아인 주연의 '사도'도 천만 관객을 돌파한다면 한국인의 역사 사랑이 다시 한 번 증명 될 듯해요. 한국사를 담은 영화의 인기가 애국심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역사 영화의 흥행을 아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해요. 역사적 사실에 재미를 주기 위한 감독의 상상을 곁들인 영화를 재미로서 즐기는 것을 넘어, 교육적인 효과까지 누린다면 일석이조겠죠?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한국사를 시대별로, 사건별로 영화를 통해 배워볼 수 있도록 한국영화 리스트를 뽑아보았어요. 많은 인기를 끈 영화도 있지만, 중대한 사건을 담은 우리가 놓친 영화를 중심으로 정리했답니다. 함께 어떤 영화가 중요한 역사적 순간을 담고 있는지 알아볼까요?
#삼국시대~고려시대 배경
1 영화 <황산벌>, <평양성>
▲ 영화 황산벌(左), 평양성(右) 공식 포스터
고구려, 신라, 백제의 치열했던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는 <황산벌>과 <평양성>이 있어요. 6~7세기경 십자외교(고구려~백제~일본 VS 당나라~신라)를 구성하고 있던 상황에서 백제의 의자왕이 신라를 공격하게 됩니다. 신라는 위협을 느끼게 되고 고구려에 SOS를 보냈고 고구려는 과거 신라에 빼앗겼던 영토를 돌려달라는 조건을 걸게 됩니다. 이를 거절하고 김춘추는 당나라와 연합을 맺게 되죠. 당나라의 사령관인 소정방과 신라의 김유신은 백제의 계백 장군 부대와 전투를 하게 되는데요. 이때 과정을 코믹하게 풀어나가는 영화가 <황산벌>입니다.
황산벌 전투에서 신라가 승리하게 되고, 백제를 손안에 넣은 신라가 다음 타겟으로 잡은 건 고구려의 평양성! 수나라의 공격에도 끄떡없이 나라를 지킨 을지문덕, 천리장성까지 세운 연개소문이 있는 고구려는 신라에게 넘볼 수 없는 존재였죠. 하지만 당나라와 연합해 백제를 멸망시키고 고구려까지 넘보는 신라의 김유신이 평양성에서 펼치는 전쟁을 보여주는, 영화 <평양성>입니다.
2 영화 <비천무>, <무사>
▲ 영화 비천무(左), 무사(右) 공식 포스터
삼국시대, 통일 신라 시대가 끝이 나고 고구려를 계승하는 왕건이 세운 나라, 고려! 고려는 개국 초기 때부터 많은 나라에게 공격을 받았어요. 10~11세기에는 거란의 침입이 3차례나 있었고, 12~13세기에는 금나라(여진)의 침입과 몽골의 침입이 있었죠. 몽골은 후에 원나라를 세우고 고려는 원 간섭기에 들어서게 됩니다. 원나라의 사위의 나라가 된 고려는 원의 내정간섭을 받게 되고, 고려 내에서는 반원 세력이 비밀스럽게 움직이게 됩니다. 이런 역사적 배경에 픽션을 가미한 영화 <비천무>입니다.
원나라가 명나라로 교체되는 시점에 공민왕은 원에 대항하기 위해 무력으로 개혁을 시행하게 됩니다. 하지만 명에 의해 공민왕 시해사건이 발생하고 명의 사신 살해사건으로 명과 고려의 관계는 악화되었죠. 이때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간첩 협의를 받고 귀양길에 오르게 된 고려의 무사를 주인공으로 명과 고려의 싸움을 보여주는 영화 <무사>입니다.
#조선의 큰 사건들
1 영화 <순수의 시대>, <관상>
▲ 영화 순수의 시대(左), 관상(右) 공식 포스터
조선은 건국부터 영화 같은 스토리를 갖고 있어요. 무인 세력이었던 이성계가 세운 조선의 건국에는 이방원(이성계의 아들)이 정몽주를 설득하는 ‘하여가’와 고려에 대한 마음이 변치 않음을 내보인 정몽주의 ‘단심가’가 유명해요. 조선의 왕좌를 둔 싸움은 개국 초부터 시작되는데요, 태조 이성계는 개국에 도움을 준 왕자 이방원이 아닌 어린 막내아들을 세자로 책봉하게 되고, 이방원은 왕자의 난을 일으켜 왕좌에 오르게 되는데요, 이 핏빛 과정을 담은 영화 <순수의 시대>입니다. 또한, 조선 왕자의 난에는 세종~단종을 모신 김종서와 수양대군(세조)의 대립을 담은 영화 <관상>이 있습니다.
2 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군도>
▲ 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左), 군도(右) 공식 포스터
나라가 백성을 버린 시기, 임진왜란 직전에는 사림이 실세를 쥐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의 배를 채우기 위해 백성들을 탈취하는 관리들과 임진왜란의 기운이 조선 민중들의 숨통을 조여 삶이 피폐해지고 있는 선조 시대였어요. 이때 등장한 정여립, 황정학, 이몽학은 평등 세상을 꿈꾸며 대동계를 만들어 관군을 대신해 왜구와 싸우게 되지만 조정은 이들을 역모죄로 몰아 해체시킵니다. 왜구들이 한양까지 쳐들어오고, 왕조차 나라를 버리고 궁을 떠나는 상황을 담은 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입니다.
삼정(전정, 군정, 환정. 오늘날의 세금과 같음)의 문란과 신분제 동요의 시기인 철종 시대에는 농민들의 항쟁 시기였습니다. 관리들의 수탈과 계급의 대립 상황에서 결국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지역을 중심으로 전국에 걸쳐 농민 항쟁이 일어났죠. 이때 양반과 탐관오리들을 물리치고 백성이 편에서 세상을 바로잡고자 하는 의적 떼인 군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치는 영화 <군도>입니다.
3 영화 <사도>, <역린>
▲ 영화 사도(左), 역린(右) 공식 포스터
조선의 다양한 사건 중에 가장 충격적인 일은 무엇일까요? 저는 아들을 죽인 왕, 영조와 사도세자 간의 사건을 꼽을 수 있어요. 탕평 정치를 통해 정치적 안정을 이루고 학문과 예법에 있어 완벽한 영조는 무수리인 어머니 때문에 정통성 논란에 시달리던 왕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아들 세자는 모두가 인정받는 왕이 되길 바랐죠. 하지만 영조와 달리 자유분방했던 사도세자가 결국 뒤주에 갇혀 죽게 되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하죠. 사도세자가 어긋나기만 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과 임오화변을 담은 영화 <사도>입니다.
영조 이후 조선의 학문, 정치를 발전시킨 정조는 사도세자의 아들입니다. 정조는 자신의 왕좌를 노리는 많은 세력의 끊임없는 암살 위협에 시달리게 되죠. 자신의 이익을 위해, 권력을 위해 정조의 목을 노리는 많은 세력들과 정조의 싸움을 담은 영화 <역린>입니다.
#일제 강점기의 아픔을 말하다
1 영화 <가비>, <아나키스트>, <암살>
▲ 영화 가비 공식 포스터
개화기 이후 왕인 고종이 커피를 즐겨 마셨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명성황후 시해 사건 이후로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 간(아관파천) 고종은 러시아에서 처음 커피를 접하고 조국으로 돌아와서도 커피를 즐겼다고 해요. 러시아와 일본 간의 권력 싸움 속에 쥐락펴락 당하고 있던 조선의 왕, 고종의 암살 작전이라는 픽션을 가미한 영화 <가비>입니다. 고종은 이후 다시 조선으로 돌아와 나라를 위해 개혁을 꿈꾸고, 을사늑약의 부조리를 알리기 위해 헤이그 특사를 파견시키지만 이를 이유로 강제 퇴위당하게 됩니다. 이런 고종의 인산일(고종의 시체가 담긴 관이 나가는 날)에 3.1 운동이 일어나 대한민국 임시 정부 수립의 계기가 마련되죠.
▲ 영화 아나키스트 공식 포스터
일제 강점기에는 많은 독립 운동가들의 대중운동과 의열 투쟁이 있었습니다. 일본의 강압적인 무단 통치를 문화 통치로 변하게 한 계기인 3.1 운동을 이후로 독립 운동가 사이에서 사회주의 세력이 커져 나갔는데요. 특히 의열단의 김원봉은 무정부주의, 즉 나아키즘을 중심으로 인권의 구속을 거부하고 노동자가 나라의 주인임을 주장하였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아닌 무정부주의가 등장할 수 있었던 시대의 영화, <아나키스트>입니다.
▲ 영화 암살 공식 포스터
이 시기에는 국내의 독립운동뿐만 아니라 간도, 상하이, 만주 등 국외에서 일본에 저항하던 독립 운동가들이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김구의 신임을 얻은 3명에게 암살작전을 지시하는데요. 친일파와 조선 주둔군을 살해하라는 명을 받은 세 명의 친일파 암살 작전을 담은 영화 <암살>입니다.
제가 소개한 영화 이외에도 많은 한국사 영화가 있는데요. 시대별로 표로 정리해 보았어요. 하나하나 순서대로 보다 보면 금세 한국의 역사의 흐름을 읽을 수 있게 될 거에요.
시대 |
영화 |
삼국시대 |
황산벌, 평양성 |
발해 |
무영검 |
고려 |
비천무, 무사 |
조선 |
순수의 시대(태종) 신기전, 나는 왕이로소이다(세종) 관상(세조) 왕의 남자(연산군)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선조) 명량(임진왜란) 조선병기 활(인조, 병자호란) 광해(광해군) 사도, 역린(영조, 정조) 군도(철종) 가비, 불꽃처럼 나비처럼(고종) |
일제강점기 |
모던보이, 놈놈놈, 암살, 아나키스트, 도마 안중근 |
한국전쟁(6.25) |
웰컴 투 동막골, 고지전, 태극기 휘날리며 |
현대사 |
변호인(전두환 前 대통령), 화려한 휴가(최규하 前 대통령) |
▲ 시대별로 살펴본 한국 영화
#웹툰으로 공부하는 한국사
스마트폰에 영화를 담아 출퇴근 시간, 등교 시간에 보는 것도 역사를 공부하는 데 좋은 방법이겠지만, 이동 시간에 무료한 시간을 달래주는 웹툰으로 역사를 공부할 수 있어요. 바로 네이버 인기 웹툰인 ‘조선왕조실톡’인데요, 조선왕조실록을 가공한 이 웹툰은 조선왕조실록의 내용을 카카오톡 대화의 형식으로 재구성한 웹툰입니다. 만화의 내용이 우리가 하루 동안 가장 많이 이용하는 어플, 카카오톡을 통해 대화하는 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역사라는 다소 재미없을 수 있는 부분을 재미있게 전달한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 웹툰 조선왕조실톡 中 (출처: 네이버 웹툰 조선왕조실톡)
또한 ‘조선왕조실톡’의 특징에는 조선왕조실록의 내용을 재구성하고 있지만, 역사를 충실히 따르기보다는 대중이 흥미를 느낄 만한 사건만을 현실의 요소(카카오톡, 유행어)를 섞어 만화를 채우기 때문에 더욱 매력을 느끼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만큼 자극적인 내용만이 에피소드로 차용되고, 역사를 흐름 없이 단편적인 사건들로만 배운다는 단점이 있어요. 그러므로 역사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찾아보는 등 부가적인 공부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