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는 것을 시샘한 봄이 날씨를 춥게 하는 꽃샘추위가 아직은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그래도 날씨가 많이 따뜻해지고 이제는 초록색의 새 생명들이 기지개를 피는 4월이 되었네요. 그래서 4월에는 나무를 심는 식목일도 있고 환경을 생각하는 지구의 날도 있지만, 우리나라 과학 발전을 위하여 지정된 과학의 날이 있는 달입니다.
오래전부터 우리나라는 과학이 발달한 나라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특히 고려 말부터 유명한 과학자들이 많이 탄생했는데요, 어떤 분들이 계셨을까요? 아마 위인전을 통해서 많이 접해 보셨을 거예요. 우리나라 최초로 화약과 화약무기를 도입하신 고려시대 과학자 최무선이 있습니다. 또 우리나라의 자랑이자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문자인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은 스스로도 과학자이지만 과학을 발전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래서 조선 세종조에 장영실이라는 훌륭한 과학자가 배출되었지요. 특히 장영실이 만든 자격루는 시계로서 정확도 아주 높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또 의술로 유명한 허준, 우리나라 천문학의 발달에 큰 도움을 준 이순지 역시 우리나라 과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인물입니다. 근대에 와서는 씨 없는 수박으로 유명한 우장춘 박사가 있고 이론물리학자로 유명한 이휘소 박사, 한국의 파스퇴르라고 불리는 이호왕 박사 등 너무 많은 과학자들이 계셔서 다 쓸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우리나라 과학 발전에 큰 도움을 주신 분들 중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분이 있는데, 그 분은 바로 이태규 박사님입니다.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훌륭한 업적을 이루셨지만, 다소 대중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분이신데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이론화학분야에서 이름을 널리 알리신 분입니다. 게다가 고 이태규 박사님은 우리나라 최초로 화학박사 학위를 받으신 분이시기도 하지요. 이렇게 우리나라 화학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신 이태규 박사님을, 과학의 달인 4월을 맞이 하여 오늘 케미칼 스토리에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태규 박사님은 1902년 충청남도 예산에서 한학자 이용균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셨습니다. 교육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아버지 밑에서 자란 이태규 박사님은 다섯 살에 서당에 들어가 공부를 하게 됩니다. 어린 시절부터 총명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던 이태규 박사님은 천자문을 열흘 만에 다 배우게 됩니다. 그 후에 서당이 문을 닫게 되어서 아버지 밑에서 학문을 익혔으며, 이때 동몽선습, 자치통감, 소학 등을 배우게 됩니다. 어린 시절부터 호기심이 남달랐던 이태규 박사님은 장터에 가는 것을 좋아하셨는데요, 신기한 물건이라도 보면 그 자리에서 서서 관찰을 하는 것이 일상이었다고 합니다. 한 번은 병아리 중의 색이 특이한 병아리를 발견하고 관찰을 하고 있었는데요, 병아리 장수가 무엇을 보고 있냐는 질문에 병아리 깃털 색깔이 다르니 행동도 다를 것이라고 관찰하고 있다고 대답하였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이처럼 어린 시절부터 특별했던 이태규 박사님은 일제가 지배하던 시절이라 교육을 받는 것이 어려웠지만 자식들의 교육에 힘쓰셨던 아버지 덕분에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고 학교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어 예산보통학교와 경성고보를 수석으로 졸업하게 됩니다. 그 뒤에 관비유학생이라는 신분으로 일본으로 유학을 가게 되는데요, 당시 일본이 우리나라에서 지식인이 나오는 것을 두려워 고등교육을 받는 것을 막았다는 후문을 보면, 그만큼 이태규 박사님이 학업에서 뛰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에 유학을 온 뒤 히로시마고등사범학교를 들어간 이태규 박사님은 처음에는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에 적응하지 못했지만 끊임없는 노력으로 차석으로 졸업을 하게 됩니다. (1학년 때 잠깐 수업을 따라갈 수 없어서 성적이 안 좋게 나온 것을 빼면 1등을 놓친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 뒤에 교토제국대학 이학부에 들어가게 되었는데요, 그때 목표는 우리나라 최초의 이학박사가 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우리나라 실정상 박사 학위를 받는 것이 정말 힘들었던 시절인데요, 특히 이공계 쪽에서는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이 없었다고 하고, 일제치하에 있던 우리나라의 명예를 위해서 박사학위에 도전하여 당당하게 교토제국대학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게 됩니다. (당시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이학박사로 언론에 소개되었지만 실제로는 1926년에 미국 미시간대학에서 천문학으로 학위를 받은 이원철 박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뿐만 아니라 그간의 노력이 인정되어서 졸업 후에 같은 대학에 조교수로 임용되게 됩니다. 당시 시대상황 상 우리나라 사람으로 일본에서 교수가 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인데요, 이태규 박사님이 교수로 임용되었다는 것은 그 만큼 뛰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을까요?
헨리 아이링(좌), 아인슈타인(우)
엄청난 일을 하시고 우리나라의 자랑이었던 이태규 박사님은 교수로 재직하다가 더 많은 것을 배우기 위해서 미국의 프린스턴 대학으로 떠나게 됩니다. 프린스턴 대학은 세계적으로 저명한 석학들이 모인 곳으로 유명하였는데요, 촉매학의 권위자 이었던 테일러 교수, 화학에는 헨리 아이링과 메이어, 수학에는 헤르만 바일, 그리고 우리에게 아주 잘 알려진 과학자이자 물리학자인 알버튼 아인슈타인도 이 대학에 있었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이론화학에 대하여 공부를 하시던 박사님은 헨리 아이링과 같이 연구를 진행하게 되는데요, 1940년 쌍극자 능률 계산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게 됩니다. 이 논문은 화학반응을 설명하는 과정에 당시에는 최초로 양자역학을 도입하였다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게 되지요. 양자역학은 고전 물리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던 현상들을 설명해주었던 이론이며, 아주 작은 원자나 분자 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수학적인 계산을 통해 예측하게 해주는 아주 훌륭한 이론입니다. 과거에는 기본적인 현상에 대해 설명을 하는 것으로 사용되었지만, 현대 물리학에서 양자역학은 빠져서는 안 되는 이론이며 반도체에 대한 설명뿐만 아니라 기존의 컴퓨터를 대신 할 미래의 컴퓨터인 양자컴퓨터를 만드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는 이론이기 때문이지요. 이 양자역학을 이태규 박사님께서 아이링 박사와 함께 화학에 도입하면서 화학 분야에 많은 발전을 가져오게 됩니다.
프린스턴 대학에서 연구를 하시던 이태규 박사님은 2차 세계대전으로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 교토대학 화학과 교수로 일을 하다가 해방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조국의 품으로 돌아오시게 됩니다. 연구를 하기에는 좋지 않은 조국이었지만 과학의 발전을 위해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돌아오신 박사님은 조선화학회(현 대한화학회)를 설립하고 지금의 서울대학교를 설립하는 과정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 뒤 다시 미국으로 가서 유타 대학에서 연구를 계속하게 됩니다. 이곳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리-아이링 이론’(Ree-eyring theory)’을 발표하게 됩니다. 이 이론은 액체에 대하여 설명한 것으로, 기존까지는 기체와 고체에 대해서 많은 설명과 이론이 있었지만 액체에 대해서는 많은 설명이 없었습니다. 기체는 아주 자유로운 것으로 생각하면 쉽고 고체는 조밀하게 붙어있는 상태로 보면 되었지만 액체는 그 중간으로 과학자들에게 명확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휘핑크림의 경우 손에 올려 놓았을 경우 모양을 유지하지만 비비게 되면 그 모양이 사라지고 부드러운 갯벌은 한 번 빠지면 단단하게 박혀서 나오기 힘들지요? 이것은 액체의 점도에 따라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전까지는 이러한 액체에 대한 명확한 설명을 해준 이론이 없었지만, 이태규 박사님이 이 액체의 성질에 대해서 이론적으로 설명을 한 것입니다. 당시에 이보다 더 정확하게 액체의 성질을 설명한 이론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액체가 가지는 여러가지 현상을 이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아이링 교수와 함께 연구하여 만든 리-아이링 이론은 이태규 박사님을 노벨화학상 후보로 거론되게 할 만큼 과학계에서 큰 인정을 받은 이론입니다.
이렇게 많은 업적을 남기신 이태규 박사님은 조국을 너무나 사랑하여 돌아올 것을 대비해 미국에서 시민권을 받는 것도 포기하였고 후에 돌아온 뒤에도 한국과학기술원을 설립하고 인재양성과 교육에 몸을 바치셨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참 연구자이었던 이태규 박사님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이태규 박사님은 대학화학회와 한국과학기술원 설립 등 우리나라 화학 발전에 큰 도움을 주셨고, 화학이라는 학문을 통해 세계에 우리나라를 널리 알린 자랑스러운 과학자이십니다. 우리는 잘 모르고 있던 분이지만, 과학의 달인 4월을 맞이하여 감사의 마음을 한 번 가져 보는 것은 어떨까요?
- 참고문헌 –
한화케미칼 http://hcc.hanwha.co.kr
한화케미칼 블로그 http://www.chemidream.com/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 www.kast.or.kr/hall
대학화학회 http://new.kcsnet.or.kr/
나는 과학자이다(우리나라 최초의 화학박사 이태규 선생의 삶과 과학) 대학화학회 편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