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송중기씨와 송혜교씨가 결혼 소식을 발표하며, 두 배우가 열연을 펼친 태양의 후예가 다시 한번 주목을 받고 있는데요. 한화케미칼에도 아프가니스탄 파병을 다녀온 현실 속 태양의 후예가 있습니다. 바로 회계관리팀 서찬석 사원인데요. 지금부터 태양의 후예 유시진 대위보다 더 멋지고 매력적인 서찬석 사원의 Story를 공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가 선택한 파병의 #동기
Q.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간략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십니까? 한화케미칼 회계관리팀에서 원가회계 업무를 보고 있는 서찬석 사원입니다. 영국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고, 런던의 임페리얼 칼리지라는 대학교에서 수학을 전공하였습니다. 2014년 7월 입사자로 어느덧 재직 만 3년을 앞두고 있는데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아 아직 열심히 배워나가고 있습니다.
Q. 군 복무 시절 해외 파병 경험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내전 국가인 아프가니스탄 파병 근무를 지원하게 된 동기가 무엇인가요?
육군통역장교로 입대하여 2011년부터 2014년까지 복무를 하게 되었는데, 3년이라는 긴 기간동안 한 곳에서 똑같은 일만 하면서 지내면 조금 지루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육군의 경우, 당시 기준으로 레바논, 아이티, 아프가니스탄 등 재건 및 평화유지활동이 한창인 국가에 대해서 해외파병 공고가 매년 있었는데요. 마침 육군본부에서 아프가니스탄 파병을 위한 인원을 모집하고 있어 지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Q. 파병을 가는 것에 부모님을 포함한 주변의 반대는 없으셨나요?
부모님, 특히 저희 어머니께서 반대를 심하게 하셨는데요. 사실 베트남전 이후 대한민국 해외파병 역사에서 군인이 순직한 사례가 1건 밖에 없습니다(비록 이 분이 제가 근무한 지역에서 제가 담당한 업무를 하셨던 분이었지만). 대한민국 육군이 파병을 하는 지역도 비교적 안전한 곳이고 파병 국가에서 하는 작전 활동 대부분이 비전투 성격이라는 점을 들어 부모님을 설득하였습니다.
파병에서 수행한 #임무
Q. 아프가니스탄 파병 기간에 주로 어떤 임무를 담당하셨나요?
제 보직은 통역이었기 때문에 파병부대장(대령)의 통역을 주로 담당하였고 연합군(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미군)과의 연락, 각종 자료 번역 등을 하였습니다. 파병부대의 정식명칭은 아프간재건지원단이었는데, 저는 5진에서 근무를 하였습니다. 5진의 임무는 한국군 기지를 아프간 정부에 이양하고 인근 연합군기지에 1/10 규모의 병력만 남기고 철수하는 것이었는데 관련하여 연합군기지로 파견되어 거기서 또 3개월간 근무하였습니다.
Q. 파병을 위해 일반장병들과 달리 따로 받는 훈련이 있었나요?
해외 파병 장병으로 선발된 인원들은 파병에 앞서 모두 국제평화지원단에 소집되어 2개월간 훈련을 받습니다. 보직에 따라 선발을 하고 저마다 T.O.가 다르기 때문에 대부분 이미 기존부대에서 하던 일 그대로 파병지에 가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선발하는 보직은 일부를 제외하고 전부 참모 성격이며, 실제 전투원은 원래 국제평화지원단 자체 소속의 인원들로 구성이 됩니다. 국제평화지원단은 과거 5공수특전여단을 개편하여 창설한 부대인데, 그렇기 때문에 부대원들은 전부 고도로 훈련된 특전사 소속의 인원들입니다. 따라서 선발인원들은 따로 강도 높은 훈련을 받을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래도 기초체력단련은 많이 했던 것 같고, 이슬람 문화에 대한 이해를 위해 지속적으로 교육을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곳은 어떨까? #파병 생활
Q. 파병지의 숙소와 편의시설 그리고 식사는 어땠나요?
숙소는 디자인에 대한 고려 없이 구축한 콘크리트 건물로 2인 1실을 썼는데 한 방에 욕실, 침대, 장롱, 책상 필요한 가구는 다 구비 되어 있었습니다. 방마다 TV가 있었는데 KBS World는 잘 나왔던 것 같습니다. 간혹 귀여운 생쥐와 손바닥만한 거미가 방안을 돌아다니곤 했는데 개인적으로 타지에서 같이 지내기에 적적하지 않고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와이파이는 하루 중 사용 가능한 시간대가 있는데 기본적으로 느린데다가 사람들이 많이 몰려 인터넷을 하기는 애매해서 카카오톡 정도만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발전기나 워터펌프가 고장 나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샤워나 급식에 제한이 있다 보니 이때 삶의 질이 급 저하 되곤 했었습니다.
파병부대의 가장 큰 장점은 먹는 것만큼은 확실하게 잘 챙겨준다는 부분인데요. 한국군기지의 경우, 반찬 가지 수도 많고 한식으로 굉장히 잘 나왔던 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평균적으로 끼니당 만원 정도로 보면 된다고 들었던 것 같습니다. 미군기지는 뷔페식이라 음식 종류가 훨씬 많았는데요. 2~3만명이 거주하는 곳이라 급식시설도 수십 곳 있고, 시설마다 메뉴들이 조금씩 달랐었습니다. 주 1회 바닷가재가 나오는 곳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한국군들로 많이 붐볐고 인당 2~3마리씩 포장해서 챙겨 나오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걸 각자 보관하고 있다가 주말에 친한 사람들과 삼삼오오 모여 라면과 함께 끓여 먹었습니다.
Q. 파병 근무 기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매년 9월 즈음이면 이슬람국가 최대 명절 중 하나인 Eid al Adha가 시작됩니다. 이 때가 되면 오사마 빈라덴이 세계무역센터 테러를 자행했던 9월 11일과 맞물려 탈레반 등 테러조직의 활동이 가장 활발해지는데요. 가장 흔한 공격 형태는 RPG(바주카포와 유사)를 이용한 공격입니다. 2012년 9월 11일 저는 바그람 연합군기지에 파견되어 근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기지가 포격을 받으면 바로 전역에 자동 경고방송이 나오고, 이때 저는 바로 옷을 챙겨 입고 제가 당시 파견 중이었던 경비부대의 지휘통제실로 가야 합니다. 한국군기지에 피해상황, 사건경과, 연합군 조치사항 등을 보고해야 되기 때문인데요, 보통은 테러세력이 2~3발 정도만 쏘고 도망을 치는데 이날은 20발을 넘게 쏘았고 지휘통제실로 뛰어가는 도중에도 주변에서 폭발음을 계속 들을 수 있었습니다. 지휘통제실에서는 진압을 위해 투입된 AH-64(아파치헬기)에서 보내주는 실시간 영상으로 상황을 모니터링 하였는데 이례적으로 테러범들이 생포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파병 후 생긴 #변화
Q. 아무래도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었던 파병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다시 돌아왔을 때 많은 부분에서 변화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변화된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나요?
사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많이 박약하고 부족한 상태인데, 그래도 은근함과 끈기, 신독을 조금이나마 기를 수 있었던 기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한 가지 제가 느낀 점이 있다면 생사가 걸린 위기 상황에서는 개인이 아닌 조직을 위해 사고하여야 하며 또 그렇게 했을 때 개인의 생존율이 가장 높아진다는 사실입니다. 군대 얘기는 사실 어디서도 선호되는 대화주제가 아닌데, 더 재미없게 풀은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있습니다. 아무쪼록 다가오는 여름철 피서준비 잘하시고 이 글을 읽은 모든 분들이 조금이나마 파병에 대한 궁금증이 풀리셨기를 바랍니다. 모두 무더운 여름 건강하게 보내세요~!
* 이 콘텐츠의 모든 저작권은 한화케미칼 공식 블로그 케미칼드림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