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커먼 액체의 화려한 변신
검은 석유가 어떻게 스타킹, 플라스틱, 과자 포장지 등 상상하기 힘든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할까요? 석유의 이와 같은 변신은 석유화학공정의 발전 때문에 가능해진 일입니다. 석유제품과 천연가스로 에틸렌, 벤젠 등의 석유의 기초유분을 만들고, 우리가 원하는 완제품을 얻을 수 있게 되었거든요.
다양한 원유의 모습
탄화수소의 가스분석
황산
땅 속에서 끌어올린 원유는 생산되는 지역에 따라 API, 황 함량 등 석유의 성분이 다르고, 이를 수출입 하여 정제하는 과정 또한 다양합니다. 채굴해서 바로 쓸 수 있는 게 아니라 정제 과정이 필수라는 말이지요.
API도란 미국석유협회(America Petroleum Institute) 가 정한 수치로, 원유 비중이 작아질수록 API 값이 커집니다. API 30도 이하를 중질(重質) 원유, 30~34도를 중질(中質)원유, 34도 이상을 경질(輕質) 원유 로 분류합니다. 또한 황 함량 에 따라서도 나누는데요, 황 1% 이하를 저유황 원유로 분류합니다. API가 높은 경질유일수록, 황 함량이 적을수록 좋은 품질의 석유입니다.
# 원유의 변신은 무죄
원유에는 탄소, 수소가 이어진 탄화수소 화합물과 산소, 유황, 질소 등 여러 가지 물질이 섞여 있어요. 그래서 원유에 열과 압력의 변화를 주어 유분을 분리하고 회수하는 원유 정제를 합니다. '유분'이란 정제되지 않은 반제품을 부르는 말로, 유분을 다시 분해하고 성질과 성상을 조절하는 과정을 거치면 우리가 주유소에서 볼 수 있는 완제품이 만들어 집니다. 원유를 정제하면 LPG 2%, 휘발유 8%, 나프타 12%, 등유와 경유 35%, 중유 38%, 아스팔트와 나머지 잔사유가 5%정도 생산된답니다.
우린 부탄가스로 불을 켜서 전골을 끓여먹고 휘발유를 넣은 자동차를 타지요? 원유를 끓이면 바로 이런 '부탄'과 같은 연료들이 분리되어 나옵니다. 대략의 끓는점으로 분류하자면 프로판은 -42℃, 부탄 -1℃, 휘발유 35~120℃, 등유 150~280℃, 경유 230~350℃ 등으로 서로 다르답니다. 끓는점이 300℃가 넘는 물질로는 아스팔트, 중유, 잔사유가 있는데 이 중 액체 상태는 유동 파라핀, 반고체 상태를 바셀린, 고체 상태를 파라핀 납으로 부르기도 해요.
끓는점이 350℃가 넘어가면 중유라고 불러요. 보일러나 디젤엔진 등의 연료로 쓰는데요, 400℃ 넘게 열을 가해도 그대로 남아있는 상태를 아스팔트라고 합니다. 우리가 날마다 걸어 다니는 도로를 포장하는 물질이 바로 이 아스팔트랍니다. 점착력도 좋고 방수능력이 뛰어나며 전기도 통하지 않아 도로의 포장에 안성맞춤이랍니다.
# 열을 이용하는 상압증류!
원유 속에서 다양한 탄화수소를 분리해 내는 방법에는 상압증류공정(CDU), 등경유탈황공정(MDU), 접촉 개질공정(PF), 벤젠회수공정, 액화가스회수, 탈황공정, 유황회수공정 등이 있습니다. 원유를 정제하는 방법 중 하나인 상압증류는 끓는점 차이로 원유에서 가스, 휘발유, 나프타, 등유, 경유, 역청 등을 분리하는 방법입니다.
탄소와 수소가 연결된 탄화수소는 탄소의 수가 적은 연결 상태일수록 낮은 온도에서 분류해 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원유에 열을 가해 20℃ 정도 되었다면 프로판과 부탄은 끓는점을 넘었으므로 기체 상태인 가스가 되고, 나머지는 아직 끓는점에 도달하지 못하였으니 여전히 액체 상태로 남아있지요.
그래서 휘발성이 강하고 끓는점이 낮은 성분은 빨리 기체 상태가 되어 상층부로 올라가고, 끓는점이 높고 무거운 성분은 아래로 깔리게 되면서 서로 다른 상으로 분리가 되는 거랍니다. 위의 원리를 이용하기 위해 정제 공장에 실려온 원유는 거대한 증류탑으로 갑니다. 먼저 비교적 쉽게 분리가 되는 가솔린 일부를 증발로 분리시킨 다음 가열실에서 열을 가합니다.
그러면 끓는점에 따라 증류탑 내에서 층층이 성분이 분리가 되지요. 증류탑의 가장 아래에는 무거운 중유, 중간에는 등유와 경유, 가장 높은 증류탑 꼭대기에서는 가벼운 가솔린이 자리하게 됩니다. 이렇게 원유 속에 포함된 물질들이 고유한 녹는점과 끓는점을 넘으면서 고체에서 액체로, 액체에서 기체로 상이 변하면서 각 층의 관을 통해서 개별적으로 이동하면서 차게 식혀져 회수됩니다.
# 압력을 이용하는 감압증류!
상압증류 방법과 함께 감압증류의 방법도 이용합니다. 상압증류 방법으로 분리해낸 유분 중에서 잔사유에서 윤활유 같은 유분을 얻어내기 위해 쓰는 방법이지요. 물질이 상태가 변하는 건 열과 압력에 의해서랍니다. 원유 속 탄화수소에 300℃가 넘는 열이 가해지면 열분해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열분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낮은 온도에서 분리를 시키는 방법을 연구 하다가 압력을 내리는 방법을 쓰게 되었어요. 압력을 낮추면 물질은 끓는점이 낮아집니다. 집에서 밥을 해 먹을 때는 1기압 상태라서 100℃에서 물이 끓지만, 산에서 밥을 해 먹을 때는 기압이 1기압보다 낮은 상태라서 더 낮은 온도에서 물이 끓는 것과 같답니다.
300℃가 넘는 높은 끓는 점을 가진 중유분에 압력을 낮추어 주면 200℃ 내외로 끓는점이 낮아집니다. 낮은 온도에서 증류를 할 수 있으니 적게 열을 가하면서 보다 쉽게 증류를 할 수 있게 되지요.
# 크래킹으로 가치를 업그레이드 하자!
열과 압력을 변화시켜 분리해 낸 각 탄화수소를 이왕이면 품질 좋은 탄화수소의 형태로 바꾸면 좋지 않을까요? 그래서 각종 처리과정을 추가로 더해서 가치 높은 석유제품으로 탈바꿈 시킵니다.
커다란 덩어리의 탄화수소의 가치를 높이는 방법으로 크래킹이 있습니다. 크래킹은 커다란 탄화수소 덩어리를 쪼개는 과정입니다. 열분해나 접촉분해법 등을 이용해 끓는점이 높고 분자량이 큰 탄화수소를 끓는점이 낮고 작은 크기의 탄화수소로 바꾸어 내는 과정을 말합니다.
열분해(Thermal Cracking)는 감압증류와는 반대로 압력을 높여서 가열하여 증류합니다. 끓는 점이 높은 탄화수소에 열과 압력을 가해 분리를 해 내는 이 방법은 가솔린을 증산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열과 촉매를 사용하여 유분을 분해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촉매는 자신은 성질이 변하지 않으면서 반응의 속도를 조절하는 물질입니다. 열과 압력을 조절하지 않아도 촉매를 넣어주면 반응을 빠르게 만들 수 있어 석유화학공정에서 널리 이용되는 방법입니다.
그 밖에 수소를 촉매로 하여 원유를 나프타나 중간 유분으로 만드는 방법도 있고 블렌딩하는 방법도 있답니다. 서로 다른 술이나 주스를 섞어서 맛있는 칵테일을 만들듯 상압시설이나 2차 처리 공정에서 만들어진 유분끼리 섞거나 첨가물을 더해 탄화수소의 성상을 조절하고 가치를 높이지요.
# 이상한 냄새, 이상한 색, 황 제거로 한번에!
원유의 값을 결정하는 성분의 하나는 황입니다. 황이 많으면 처리하기 힘들어서 값어치가 낮아집니다. 황뿐만 아니라 원유에 들어있는 여러 가지 불순물을 제거해야 이상한 냄새도 나지 않고 원유에 원하지 않는 색이 나타나는 현상도 막을 수 있어요.
분리해 낸 석유의 유분에 황산세정, 알칼리세정, 활성백토 등을 넣어 줍니다. 황산물질을 쓰면 유황 화합물 등을 제거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이런 황산 성분이 들어 있는 유분을 그냥 둘 수는 없겠죠? 그래서 이를 중화시킬 수 있는 알칼리 용액을 이용해서 산성 성분을 중화시킵니다.
여기에 하나 더! 활성백토는 점토광물의 일종이에요. 작은 알갱이지만 표면적이 넓어서 불필요한 성분들이 들러 붙기 좋기 때문에 활성백토를 넣어 불순물을 흡착시켜 제거합니다. 이런 물리화학적인 처리 과정을 통해서 비로소 석유화학공정의 원료이자 우리가 원하는 성상의 탄화수소를 얻어낼 수 있답니다.
# 석유화학의 쌀! 나프타
원유는 LPG, 나프타, 휘발유, 등유, 항공유, 경유, 중유, 아스팔트 등으로 분류됩니다. 이 중에서 석유화학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건 나프타입니다. 액체 상태의 탄화수소 중에서 가볍고 휘발성 강한 성분을 부르는 말인데, 대략 30~200℃ 사이의 끓는 점을 가집니다. 나프타는 C4~C12가 주를 이루는 탄소화합물인데 탄소의 수가 적으면 경질 나프타, 탄소의 수가 많아지면 중질 나프타로 구분되지요.
채굴한 원유의 15~30% 내외를 차지하는 나프타는 다양한 석유화학제품으로 재탄생합니다. 즉 정제를 통해 얻어진 나프타는 그 자체로 하나의 상품이 되지만 동시에 석유화학업계의 가장 중요한 원료가 되기도 합니다.
나프타는 다시 어떻게 변할까요? 나프타는 에틸렌, 프로필렌, 벤젠, 톨루엔, 크실렌 등으로 나누어집니다. 에틸렌은 폴리에틸렌, 폴리스틸렌을 만들 원료가 되고, 프로필렌은 폴리프로필렌을, 부탄이나 부틸렌으로는 합성고무를 만들 수 있어요. 이 물질들은 플라스틱가공업, 섬유공업, 고무공업, 도료공업, 세제 공업 등의 원료로 쓰이지요. 이렇게 공장의 원료가 최종 제품으로 변신해 일용품, 접착체, 염료, 농약, 의약품, 공업제품, 인테리어 자재 등이 됩니다. 석유화학제품의 기초가 되는 물질이라고 할 수 있어요.
* 참고문헌 : 중질유 분해 연료유의 특성(대한석유협회 저), 석유화학산업의 이해(대한석유협회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