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케미칼 북 마스터 추천도서 ①

유난히 남 눈치가 신경 쓰이는 날이었습니다.
남이 가진 것이 더 커 보이고, 남들보다 내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지고 나만이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듯한 기분에 휩싸였던 그런 날. 답답한 마음에 눈을 돌리던 중 책상 언저리에 서류들과 아무렇게나 쌓여있는 많은 책 중에 시선을 잡은 짧은 글귀 한 줄.
개그맨 김병만이 자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이야기를 담은 자전 에세이집이었습니다. 왠지 반가운 마음에 책을 들었습니다.

제가 개그맨 김병만을 처음으로 관심 갖고 지켜보게 된 건, 달인프로그램이 아닌 S본부의 “키스앤크라이”에서였습니다. 처음에는 김연아 때문에 보기 시작했지만 김병만의 “채플린” 연기를 보고 이내 그에게 빠져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피겨를 시작한지 얼마 안되었다는 사실보다는 그가 연기한 표정과 몸짓에서 진심어린 채플린의 오마주가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포탈사이트를 통해 그의 달인 연기를 찾아보았습니다. 16년동안 공중천 퍼포먼스를 연마해 온 공중천의 달인 “커튼 김병만 선생” 편이었습니다.안전장비도 하지 않은 채 펼치는 퍼포먼스를 보는 내내 “어이쿠!” “어머~” ”헉~” 3단 콤보를 연신 내뱉으며 몇 분간 펼쳐지는 그의 달인연기에 빨려 들었습니다.
그 짧은 프로그램 안에는 달인 이꼬르(=) 김병만이라는 어느 새 고유명사가 되어버린 사나이가 있었습니다. "가진 건 꿈 밖에 없었습니다" 라는 글로 시작하는 그의 에세이 집은 터널일지 동굴일지 모르는 무명의 기나긴 기간을 바퀴벌레와 추위와 동거동락을 하고 닥치는 대로 굶고 간간히 끼니를 때워가며 찢어지는 가난을 두엄 삼아 끊어질 듯 말듯한 희망의 싹을 키워냅니다.
그의 무명시절 이야기 속의 가난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처음으로 가난이라는 말을 글로 느껴봤습니다. 없는 살림에도 당당하게 후배들을 끌고 와서 물 한잔 대접하는 그의 순박함에 맘 한 켠이 짠해 옵니다.. 제대로 모성본능을 일으키는 찌질남입니다. 지금의 달인팀이 꾸려지기 전의 개그맨 류담과의 일화도 소개합니다.
류담은 김병만의 노숙보다는 조금 나을 뿐인 단칸방을 보며 "가진게 그거 밖에 없으면서도 그것 마저 내어주는... 마음을 다 내어주는 사람이었다"고,
그 화류계에서는 볼 수 없는 우직함, 순박함과 그가 내뱉는 애드립에서 나오는 천재성에 그와 끝까지 함께 가겠다고 마음을 먹습니다.
몇몇 무늬만 자서전인, 대필해서 쓴 티가 팍팍 나는, 글뽐새를 자랑하는데 끝이 없어 상업적인 냄새가 물씬 나는 문체가 아닌, 초등학생이 책받침을 뒤에 꽂은 깍두기 노트에 연필로 한자한자 꾹꾹 눌러쓴 느낌이 나는 김병만 다운 그런 책이었습니다. 이 책을 덮을 때쯤 정성들이지 못했던 기획이나, 대충 넘기려 했던 타 부서의 부탁, 남만 잘되는 거 같은 치기어린 앙탈이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릅니다.
나보다 못했던 시기의 김병만을 보고 희망을 얻었던 것이 아니라 그보다 좋은 환경에서 안이하게 살아가고 있는 내 자신을 반성했습니다. 달인을 한편밖에 보지 못한 터라 어떤 달인이 있었는지 찾아보았는데 모두 똑같이 “16년 동안”이라며 시작되더군요.....
달인에게 16년이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지 않으셨나요? 그래서 뉴스기사를 찾아보니....제작진이 밝힌 바에 따르면 아무 의미 없이 그저 발음하기 쉬워서 그랬다고 합니다. 정말 아무 의미도 없답니다. 왠지 이마저도 달인 답습니다 ^^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에서 토끼를 이긴 거북이 같은 남자!! 그의 연기를 보고 웃어야 하는데,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게 하는 우는 개그의 달인 김병만. 그의 판도라의 상자에는 이미 빠져나갔던 불행과 악몽들이 모두 노화되서 죽고 이제 상자 밖으로 나온 희망만이 자리잡아 그의 곁을 빛내주고 있는 거 같습니다.
내 불행 악몽들은 언제 노화되는것인지... 읽은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또 김병만을 시기하고 있는 나!!!.. ㅜ이래 놓고 이 책을 추천해도 되나? 단지 나의 성향이 후천성 남부럼증인건가? 뭔가 부산하고 쫓기듯 어설프게 저의 첫 번째 추천도서 소개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