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칵테일파티 효과(cocktail party effect)란 여러 음원이 존재할 때, 인간은 자신이 듣고 싶은 음을 선별해서 들을 수 있는 상황을 의미합니다. 칵테일파티와 같이 주변이 매우 시끄러운 장소에서도 상대방과의 대화를 진행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지요.
워낙 다양한 아이디어와 강렬한 비주얼, 포스트 모더니즘의 표현 등 수많은 광고들이 우리의 눈과 귀를 자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찬찬히 살펴 보면 어느 정도 패턴이 정해져 있는 것이 보이는데요. 특히나 제약 광고류가 그 중의 하나로 평가됩니다. 그래서 오늘은 제약광고의 트렌드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기본적으로 품목의 특성상 반드시 문제 발생의 상황을 보여줘야 하며(의약품의 용도, 두통, 치통, 생리통이 하나의 약으로 치료가 된다는 상황설정 등), 복용 후의 개선 상황을 드라마틱하게 전달이 되어야(약의 효능, 효과)하고, 임팩트 있는 제품명까지 소비자의 뇌리에 꽂혀야 구매까지 이어지는 바람직한 광고로 탄생이 됩니다. 여기에 경쟁 제품과의 차별성을 부여하기 위해 천연성분을 강조하거나 효능이 즉각 나타나는 스피디함을 표현하고, 세균맨이나 피로물질을 캐릭터화하여 이들을 무력화시키는 시추에이션을 표현하기도 하지요. 이런 장황하고 자잘한 스토리라인을 하나로 몰기가 쉬운 작업이 아니다 보니… ‘간때문이야~우루사’ 나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이가탄’ 같은 CM송들이 유독 많이 활용되는 것이 바로 제약 광고입니다.
(좌) 삼진제약 ‘게보린’ 광고장면 캡처 (우) 스트렙실 광고장면캡처
(좌) 대웅제약 ‘우루사’ 광고장면 캡처 (우) 일동제약 ‘아로나민’ 광고장면 캡처
또 그러다 보니 그리 크리에이티브하다 라고 보여지는 광고를 찾아보기 힘든 분야도 바로 제약광고입니다.(실제 메이저 광고 대행사 CD 실무자의 코멘트) 하나 더 재미있는 점이 있는데, 바로 장기적으로 라이벌 구도의 장수 제품들이 치열하게 광고를 집행하고 있으며, 그 덕(?)에 소비자들은 본인이 인식한 제품을 실제로 유사 라이벌 제품과 혼동하는 경우가 비일비재 하지요.
케토톱과 트라스트, 이가탄과 인사돌, 우루사와 아로나민, 게보린과 펜잘Q, 마데카솔과 후시딘, 박카스와 비타500(엄밀히 자양강장제와 비타음료로 법적으로는 다른 카테고리이나, 피로회복 음료로 포지셔닝되어 같은 범주로 봄) 등 소비자가 광고와 제품을 혼동하는 경우로 꼽히는 주요 사례이며,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라이벌 장수 브랜드가 유독 많다는 것은 새로운 신규 제품이 틈새를 파고들어갈 여지가 그만큼 어렵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가장 오래된 제약 제품은 무엇일까요? 동화제약의 ‘활명수’는 조선왕조 고종임금께서 대한제국 황제로 즉위하시던 1897년 당시 궁중 선전관으로 있던 민병호 (閔竝浩)선생이 궁중에서만 복용되던 생약의 비방을 일반 국민에까지 널리 보급 하고자 서양의학을 접목하여 개발한 우리나라 최초의 신약이며, 양약(洋藥)입니다. (출처: 동화제약) 실제로 동화약품은 가장 오래된 제조회사 및 제약회사(1897년), 최초의 등록상품 '활명수' 및 등록상표 '부채표'(1910년) 명목으로 한국 기네스북에도 등재되어 있지요.
이런, 이야기가 장황해져 버렸네요. 이제 정•반•합으로 정리해 볼게요. 처음에 얘기한 칵테일 파티 효과는 비단, 모든 광고에서도 그렇겠지만, 특히 비등비등, 그게 그것처럼 보이는 제약 광고에서는 너무나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아무리 시끄러운 파티장에서도 자기 이름을 부르는 소리는 똑똑히 들리는 것처럼, 마치 고기 몇 점 없는 찌개 국물 속에서 왕건더기만 정확히 골라내는 젓가락질처럼, 광고의 파티, 커뮤니케이션의 혼잡한 파티 속에서 제약 광고는 소비자의 귓속으로 정확히 배달되어야 하지요.
여기에 소비자의 귓속에 자기 이름을 부르는 것과 같은 효과, 칵테일파티효과가 특히 돋보이는 최근의 제약 광고가 있었으니, 하필이면 그것이 최장수 의약제품의 광고네요.
동화제약 ‘까스 활명수’ 광고장면 캡처
TV속의 화면은 너무나도, 누구나도 알 수 있는 삼각 김밥과 햄버거의 캐릭터를 보여주고 있어요. 단지 먹음직스럽고 귀엽기보다는 외모적으로도 부담스러운 모습의 그것이지요. 또 하나 캐릭터의 시각적뿐 만이 아니라 청각적으로도 부담(?)스러운 광고의 배경 음악은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 중 ‘밤의 여왕의 아리아’가 사용되어 공감각적으로 더부룩함을 느끼게 해주고 있습니다. 이 더부룩함을 활명수의 액상 제약으로 한 순간에 날려버리는 통쾌함과 속시원함!!! 그리고, ‘빠른 소화엔 활명수’라는 단 하나의 나레이션.
사실 빠른 소화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묵은 체증을 한방에 날려버리는 신선한 광고내용만으로도 충분하지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것을 단 15초만으로 표현하고 소비자에게 빠르게 전달했다는 것입니다. ‘활명수’는 이러한 빠른 표현과 전달력으로 앞에서 말한 크리에이티브하지 못하고 고만고만한 ‘제약 광고'라는 수많은 광고 파티(?)의 소음들 속에서 똑똑하게 소비자의 귓전을 때려버린 것이지요. 잊을 수 없기에 충분한 '까스활명수'라는 단아하고 고풍스러운 멋진 미인이 찢어진 디젤 진을 믹스매치 하고 마티니 칵테일을 들고 나를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활명수 뿐만 아니라 최근 제약 광고도 기존의 틀을 뛰어넘어 새롭게 접근하는 광고들이 많이 나오고 있어요. 두말하면 입아픈 ‘박카스’ 시리즈 외에도, 당신이 머리 아픈건 남보다 더 열정적이기 때문이라는 타이레놀, 심야식당을 패러디하면서 몸과 마음의 소화를 선언한 훼스탈, '자연보다 더 좋은 두통약은 없습니다' 라는 한국인의 두통약 게보린, 마음의 상처엔 후시딘 등 이제는 다양한 접근과 효능 효과에 있어서도 힐링을 고려한 다른 시각의 제약 광고가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한독약품 ‘훼스탈’ 광고장면 캡처
삼진제약 ‘게보린’ 광고장면 캡처
약효보다는 힐링을 유머스럽게 풀어낸 후시딘 공식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