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아마도 한 번쯤 해외에서 낭만 있어 보이는 야간열차 여행을 꿈꾸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좁고 덥고 혹은 춥거나 도난 걱정에 잠도 제대로 못 이루는 설국열차급 고난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도 야간열차의 낭만은 이를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죠. 작가 정여울씨는 “유럽의 야간열차는 내게 그리워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라고 했는데요.
멀리 가지 않고도 이런 야간열차의 낭만을 느끼시고 싶지 않으신가요? 우리나라에서도 덜컹거리는 창밖을 보며 추억에 빠져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야간열차가 있습니다. 바로 10:45분 용산발 여수행 무궁화호입니다. 지금부터 함께 여수행 무궁화호에 탑승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수로 떠나는 #야간열차
야간열차에서 내려 맞는 #여수의 밤과 해돋이
여수엑스포역에 내리면 새벽 4시의 차가운 동장군이 얼굴에 불어닥칩니다. 아직 향일암 출발까지는 1시간 30분 정도가 남아 있으니 근처 24시 사우나나 역 내의 맞이방에서 시간을 흘려보냅니다. 치안상의 문제도 있으니, 이 시간에는 밖에서 돌아다니는 것보다 편의점 내부라도 들어가 있는 것이 좋지요. 다행히 여수엑스포역에서 3분만 걸어나가면 잠시 쉴 수 있는 다양한 장소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5시 30분, 여수엑스포역에서 직진하면 나오는 동광탕 앞 버스정류장에서 향일암행 111/113번 버스를 탑니다. 여수 시내에서 향일암까지는 버스로 약 1시간 정도 소요되고 버스 종점에서 향일암까지 걸어 올라가는 길은 성인 기준 약 20분 정도 걸려요. 일출이 대략 7시 20분 정도에 있으니 시간은 여유가 있습니다.
향일암은 선덕여왕 13년 원효대사가 창건했고, 이후 고려 때 윤필거사가 중창하여 임진왜란 때에는 승병의 거점으로 이용되었습니다. 바로 앞마을이 바다로 돌출한 거북이 모양을 띠고 있어 거북이 불경을 지고 바다로 헤엄쳐 나가는 모양새를 보입니다. 향일암의 일출 명소에도 조각된 거북이가 바다를 마주하고 있죠. 한려수도에서 가장 넓게 펼쳐진 바다와 함께 해를 볼 수 있는 곳, 바로 향일암입니다. 물론 위 사진처럼 저는 구름이 잔뜩 끼어 있어서 해를 볼 수 없었어요.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은 부디 구름 없는 깨끗한 하늘에서 해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향일암에서 밑으로 내려오다 보면 많은 백반 식당들이 거리를 양옆으로 하여 문을 열고 있습니다. 붐비는 시기에는 아침 식사가 가능한 식당도 많고, 버스 정류장 옆에는 편의점도 있어요. 이곳에서 팔고 있는 갓김치는 돌산읍의 톡 쏘는 맛이 알싸한 진짜 갓김치입니다. 내려오는 길에 갓김치 맛도 보고, 택배로 부칠 수 있어, 이곳에서 구매하시는 분들도 많더라고요. 향일암 버스 종점에서 여수 시내로 다시 나가는 버스는 9시 15분, 30분에 있습니다. 이 시간을 잘 맞추셔서 여수 시내의 관광지를 놓치지 마세요! 참고로 그다음 버스는 10시가 되어야 있습니다.
엑스포와 맞닿은 하늘 #오동도가 그리는 바다
여수 시내로 나와 다시 엑스포역에 도착하면 바로 옆에 여수 신항이 보입니다. 사실 낮에 보는 겨울 바다는 최근 유행한 드라마 <도깨비>에서처럼 낭만적이지는 않죠. 물론 공유가 옆에 서 있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여수의 겨울 바다는 포항에서처럼 상생의 손과 함께 탁 트인 조망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해운대처럼 마천루와 함께 공존하는 도심 속의 바다를 보여주지도 않습니다. 해안가는 나무 데크로 포장되어 있고, 파도가 밀려오는 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아요. 하지만 여수의 잔잔한 겨울 바다는 하염없이 앉아 지나간 기억들을 떠올리기에 매우 적합한 곳입니다.
위 사진에 빨갛게 녹슨 랜드마크가 바로 빅-오입니다. 겨울에는 야간에 빅-오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과 함께 빛을 쏘는 빅오쇼도 운영하지 않고, 오동도 음악 분수도 틀지 않아요. 매우 휑하고 썰렁해 보일 수 있지만 매일 내뿜던 물줄기로 인해 녹이 슬어 버린 빅-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습니다. 엑스포가 끝나 적막해진 행사장과 함께 운치를 즐기기에도 좋지요. 여수 아쿠아플라넷은 아이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많이 마련되어 있어 가족 단위 여행객들에게 아주 좋습니다. 입장료는 어른 23,000원에 아이 19,000원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위 사진과 같이 생긴 엠블호텔을 향해 걷습니다. 빅-오에서 엠블호텔까지는 걸어서 약 15분 정도가 걸려요. 추운 겨울에는 바람을 맞으며 걷기가 힘들게 느껴질 수 있지만, 눈앞에 보이는 거리 정도라 그럭저럭 걸어갈 만 합니다. 다만 오동도에 들어갈 때는 엠블호텔 앞에서 출발하는 동백 열차를 타고 들어가야 방파제에서 칼바람에 뺨을 맞지 않아요.
물론 저는 칼바람에 머리 한쪽이 얼어붙으면서 걸어갔습니다. 시리디시린 겨울 바다를 오동도와 함께 담으려면 방파제 중간쯤에서 셔터를 눌러야 하거든요. 실제로 이날은 구름이 약간 끼고 하늘은 파란 날씨였습니다. 방파제는 그리 길지는 않지만 뒤를 돌아보면 여수 신항의 모습이 펼쳐지기도 합니다. 다만 돌아올 때는 꼭 동백 열차를 이용하세요. 동백 열차를 타도 춥습니다.
오동도 내부에 들어가면 산책로가 길게 섬 중앙을 타고 뻗어 있습니다. 지금은 운영하지 않는 오동도 음악 분수로 가는 갈림길에서 오른편 길로 들어가면 오동도 해안절벽으로 나갈 수 있는데요. 금오도 비렁길을 가지 않는 분들은 꼭 여기에서 절벽에 부딪히는 파도의 노래를 들어 보세요. 나무로 우거진 길을 빠져나가면 순간 푹 파인 파식 대지의 틈새로 파도가 밀려듭니다. 부산의 태종대와 흡사한 모습이지만 규모가 조금 작아도 바로 앞을 오가는 어선과 항구의 모습을 볼 수 있어요.
돌산 공원에서 맞는 #남해로의 해넘이
돌산 공원은 여수에서 일몰을 즐기기 가장 좋은 명소입니다. 해상케이블카가 출발하는 스테이션이 돌산 공원에 자리잡고 있고, 거북선대교를 감상하기도 좋습니다. 돌산대교로 내려가는 산책로도 있으며 반대편 해상케이블카 정류장에서는 엑스포 쪽으로 내려갈 수도 있습니다. 하루의 해 질 녘은 돌산 공원에서 돌산대교 너머로 지는 해를 감상하는 것도 좋지요.
돌산 공원에서 서쪽을 바라보면 돌산대교가 놓여 있고, 북쪽을 보면 거북선대교가 있습니다. 대교의 규모는 거북선대교가 더 크나 마땅히 사진을 찍을 만한 곳은 없지요. 거북선대교를 촬영하려면 반대편 해안가로 내려가야 합니다. 여수의 밤에 해상케이블카를 타지 않으면 상당히 아쉽죠. 발밑으로 지나가는 해상 대교의 야경과 창밖으로 펼쳐진 여수 밤바다를 보기엔 해상케이블카가 제격입니다. 반대편 스테이션으로 가서 해안가로 내려가면 버스커버스커의 곡 중 “여수 밤바다”의 뮤직비디오에서 한가인이 걷던 해안가가 나옵니다. 조금 더 연안터미널 쪽으로 가면 포장마차들도 문을 열고 있죠. 단 비수기에는 저녁 8시가 되면 대부분 문을 닫으니 유의하셔야 합니다.
바로 이 앞바다에 예전 이순신 장군께서 진남관에 전라좌수영 본영을 두고 쇠사슬을 바다 밑으로 쳐 잠입하는 왜선을 막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옵니다. 한산도대첩 이후에는 등지고 있는 여수의 산이자 엑스포에서도 또렷이 보이는 종고산에서 승리를 기념하는 은은한 북소리가 3일간 들려왔다고 해요. 이순신 장군께서 거북선을 건조한 곳도 바로 이 여수 앞바다입니다. 밤이 된 여수 앞바다에서는 옛 조선의 해군과 지금의 아름다운 선율을 함께 들으며 거닐어 보는 건 어떨까요.
여행에서 맛있는 저녁이 빠지면 섭섭합니다. 여수의 한정식 식당에서는 대부분 게장 정식을 판매합니다. 다만 2인 이상인 경우도 있으니 잘 알아보고 가야 합니다. 유명한 맛집들도 많고, 가격대가 조금 있는 정갈한 한정식 식당도 있습니다. 게장 정식에는 기본적으로 위 두 가지 게장과 밑반찬, 식당에 따라 찌개도 제공되고 있어요. 서대회는 여름 제철 음식이니 겨울에는 따뜻한 식당에서 게장 정식을 즐겨도, 해안가 포장마차에서 밤이슬과 함께 안주를 즐겨도 좋습니다.
남도 최고의 해안 절벽 트레킹 #금오도 비렁길 3코스
여수연안여객터미널에서 06:10분에 출발하는 금오도 함구미 행 배를 타면 약 1시간 20분이 걸려 금오도에 도착합니다. 금오도는 작은 섬이지만 해식 절벽과 파식 대지가 절경을 이루는 해안 지형의 진수를 보여주는 곳인데요, 이 해안을 따라 놀랍게도 벼랑길이 나 있어요. 이 벼랑길 코스를 지역 방언에 따라 비렁길이라 하고 1~5코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시작은 함구미 마을인데, 아주 작은 마을이고 물이나 음식을 살 곳도 이른 아침에는 마땅치 않으니 여수에서 미리 준비해 가셔야 합니다. 일반 성인의 체력으로 1코스부터 3코스까지 연이어 주파하는 데에는 약 6~8시간이 걸리고요. 오후 4시 30분에 금오도를 출발하는 배편이 있으니 코스 시간 계획을 잘 세우셔야 합니다.
1코스는 세 코스 중 가장 긴 길이를 가지고 있고, 길도 약간 험한 편입니다. 3코스가 가장 짧지만 경사가 가장 급하죠. 1코스를 탈 때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셔야 합니다. 좁은 대나무숲을 지나 절벽의 정상에서 전망대를 거쳐 숲길을 따라가다 보면 금방 1코스가 끝나는 두포 마을이 나옵니다. 길이는 약 5킬로미터. 두포에서 다음 2코스인 직포마을까지는 3.5km의 거리입니다. 가장 쉬운 코스이자 아기자기한 숲길이 펼쳐지는 곳이죠. 여유 있게 가다 보면 1시간 30분 정도에 주파할 수 있습니다.
여기는 3코스에서 가장 높은 매봉전망대인데요. 3코스는 경사가 가장 급하고 길이 험합니다. 숲길보다는 산악코스를 더 많이 볼 수 있지요. 하지만 매봉전망대와 비렁다리에서 바라보는 절벽과 바다는 그만한 고생을 감내할 수 있게 합니다. 까마득히 높은 곳에 자리한 매봉과 중간쯤 가면 천 길 낭떠러지 아래로 흔들리는 비렁다리는 3코스의 백미입니다. 3코스가 끝나는 학동마을에 도착하면 시간도 3시를 다해 가고 있을 텐데요. 학동마을에서 남면 여객선 터미널까지는 작은 농가들을 거쳐 15분이면 도착합니다. 작은 섬에는 버스나 택시가 거의 다니지 않으니 여유롭게 걸어서 4시 30분 섬을 출발하는 배를 타면 됩니다. 여객선 터미널 옆의 작은 마을에는 몇 가지 식당과 은행, 슈퍼 등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돌아오는 배에서는 날씨가 좋다면 섬들 사이로 지는 멋진 일몰도 볼 수 있어요.
지금까지 겨울의 매력을 더한 여수로 떠나보았습니다. 위에서 소개한 일정은 첫째 날은 여수 시내, 둘째 날은 금오도 비렁길 트레킹으로 구성된 일정인데요. 둘째 날 돌아오자마자 서울로 올라오는 KTX를 타면 1박 2일 일정도 가능합니다. 여수는 내일로의 성지라 불리는 곳이기도 하여 각종 기차 관련 할인이 들어가기도 하고, 순천과 거리가 가까워 순천여행을 하시는 분들이 묶어서 오기도 하죠. 겨울에 더 아름다운 여수, 이번 방학이 끝나기 전에 짧은 힐링을 위해 떠나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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