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 '밀밭' (출처: www.wikiart.org)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바람이 불면서 ‘가을’이 점점 우리 가까이에 찾아왔어요. 가을은 독서의 계절, 사색의 계절, 천고마비의 계절, 축제의 계절 등 다양한 수식어를 가지고 있지요. 그만큼 가을엔 다양한 활동을 하기 좋은 계절이라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멋진 계절 '가을'을 즐기기에 가장 좋은 곳 중 하나가 바로 ‘미술관’인데요. 그래서인지 올가을에도 다양한 전시회 소식들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멋진 그림 속에도 ‘화학’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 알고 계시나요? 특히 16세기 화가들이 사용한 안료, 염료, 착색제 생산 과정은 화합물 추출, 유기반응, 무기반응, 유기금속 반응, 산화환원 반응 등 종합화학이었습니다. 즉, 화가들은 화학 반응을 이해하지 못하면 빛나고 생생한 색채감을 내지 못했다는 것이죠. 그림과 화학 이야기, 흥미롭지 않으신가요? 지금부터 그림 속에 숨겨진 화학 이야기를 여러분께 들려드릴게요.
#렘브란트 그림 속 숨겨진 인물을 찾다!
▲ 렘브란트 '군복 입은 노인' 작품 속 숨겨진 인물(출처: www.gizmodo.com.au)
얼마 전 놀라운 뉴스가 들려왔어요. 바로 네덜란드의 화가 ‘렘브란트’의 작품에서 숨겨져 있던 새로운 인물을 발견했다는 소식이었는데요. 그의 작품 중 ‘군복 입은 노인’ 작품 속에 젊은 남자가 숨겨져 있었답니다. 그런데 왜 그전에는 그 사실을 몰랐을까요? 수많은 미술 연구가들은 이 그림 속에 인물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하는데요, 기술이 부족해 정체를 드러내지 못했다고 해요. 하지만 기술 발전으로 매크로-X선 형광(매크로-XRF)이라는 첨단 기술을 이용해 물감의 화학성분을 분석해 그림 속에 덧칠된 인물을 원래 인물과 분리하는 데 성공했답니다. 화학이 아니었다면, 렘브란트 속 그림에 숨겨진 인물은 절대 세상 밖으로 알려질 수 없었을 거에요.
#화학으로 원래의 색을 되찾은 명화들
▲ 빈센트 반 고흐 '해바라기'(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빈센트 반 고흐의 명작인 ‘해바라기’의 밝은 노란색은 빛을 잃고, ‘나의 침실’의 마룻바닥은 색이 흐려지고 있었는데요. 벨기에 화학자인 코엔 얀센스 교수는 고흐가 사용한 물감에 주목했습니다. 19세기 화가들이 주로 사용했던 노란색 물감은 시간이 지나면 화학성분인 '크롬'이 산화되면서 색이 흐려지게 되는데요. 고엔 얀센스 교수는 당시 사용한 유성물감이 태양광과 화학반응을 일으켜 색이 변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특정 파장의 빛을 피하면 색상이 흐려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 밝혀져, 그림 보관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해 준 것이죠.
▲ 르누아르 작품이 회색이 아닌 붉은색이라고 밝히고 있는 리처드 반 두엔 교수(출처: http://www.aaas.org)
그리고 미국 시카고 미술가는 프랑스 화가 ‘르누아르’가 1883년에 그린 ‘레옹 클라피송 부인’의 원래 색을 알아내 원래의 칙칙한 회색이 아니라, 화사한 붉은색이라는 사실을 밝혔는데요. 복원팀은 노스웨스턴대의 화학자 리처드 반 두엔 교수와 함께 라반 분광학을 이용해, 그림에 빛을 비춰 반사되는 빛의 에너지를 파악해 그림에 사용된 물감이 어떤 물질인지 알아냈습니다. 이렇게 원래 색을 모르고 바래거나 변질된 색을 원래의 작품으로 알고 있을 뻔했는데, 화학의 힘으로 원래 작가가 의도한 컬러 그대로를 생생하게 볼 수 있게 됐습니다.
#베네치아 화가들의 비밀!
▲ 지오반니 벨리니의 성모 마리아와 아기예수(출처: 위키미디어)
16세기 초 베네치아는 미술의 부흥기를 맞이하고 있었는데요. 당시 베네치아 화가들이 다른 지역보다 더 다양한 색상을 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벤데콜로리(Vendecolori)’라고 하는 물감 판매업자들 덕분이었답니다. 벤데콜로리는 염료와 착색제, 물감 등을 직접 제작하고 판매하는 도매상인이었는데요. 16세기 화가들이 사용한 안료, 염료, 착색제 생산과정은 화합물 추출, 유기반응, 무기반응, 유기금속 반응, 산화환원반응 등의 종합화학이었습니다. 벤데콜로리들은 이 화학반응을 잘 이해하고, 화가들은 벤데콜로리의 도움으로 새로운 재료와 기법을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죠.
또한, 벤데콜로리는 유리 세공에 사용하는 모래도 판매하고 있었는데, 당시 유화에 사용되지 않았던 유리질의 착색제를 도입해 더욱 생생한 색채감을 내게 했습니다. 다른 나라 화가들이 물감에 탄산칼슘이나 유리를 사용할 때 베네치아 화가들은 물감에 모래를 섞은 것이죠. 베네치아 화가들이 화려하고 멋진 색채를 그려낼 수 있었던 그 뒤에는 바로 벤데콜로리의 화학적인 노하우가 숨겨져 있었습니다.
#모나리자 눈썹은 처음부터 없었을까?
▲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나리자'(출처: 위키피디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명화 ‘모나리자’는 눈썹이 없는 얼굴로 유명한데요. 원래 처음부터 눈썹이 없었을까요? 프랑스 미술 전문가 ‘파스칼 코트’는 2009년 고해상도 카메라를 이용해 다빈치가 모나리자 그림을 완성하는 마지막 단계에서 특별한 유약처리를 하고 그 위에 모나리자의 눈썹을 그려 넣었다고 주장했는데요.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화학 반응으로 눈썹이 희미해져 지금처럼 없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다빈치는 모나리자를 수년에 걸쳐 그리면서 주홍색 안료와 납이 혼합된 물감으로 수정과 덧칠 작업을 반복했다고 하는데요, 마지막에 얼굴에 입체감을 주기 위해 특별 유약 처리를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림을 그린 16세기 당시에는 여인들이 눈썹을 그리지 않는 것이 유행했기 때문에 그의 주장이 사실인지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흥미로운 주장임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물감의 화학적 반응이 그림을 완전히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으신가요?
#물감은 무엇으로 만들어질까?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물감'은 무엇으로 만들어질까요? 물감은 천연 광물이나 식물성 안료, 또는 화학적으로 만들어진 안료에 풀 등을 섞어서 만든 것인데요. 물감은 안료에 섞는 고착제에 따라 분류됩니다. 플라스틱의 일종인 아크릴 수지와 섞으면 '아크릴 물감', 수용성인 아라비아고무와 섞으면 '수채 물감'이나 '포스터물감', 건성유와 니스를 섞으면 '유화 물감'이 됩니다. 그리고 가루 안료만으로 굳힌 것은 '파스텔'이 됩니다.
▶수채물감 _ 수용성 아라비아고무에 안료를 녹여 만든 것으로, 물의 농도에 따른 명도 변화 및 물감의 양에 따른 색깔 변화가 다양하다. 또한, 번짐과 흘림 등의 다양한 표현이 가능하고, 다른 표현 재료와 함께 사용하기도 쉽다
▶아크릴 물감 _ 플라스틱의 일종인 아크릴 수지에 안료를 녹인 것으로, 수채 물감과 같은 장점을 가진 물감이다. 물을 사용할 수 있고, 건조가 빠르며, 두꺼운 질감 표현이 가능하여 현대 회화의 중요한 재료다.
▶유화 물감 _ 유화 물감은 건성유와 니스에 안료를 녹인 것으로, 풍부한 변화와 중후한 표현이 가능하여 서양화의 가장 중요한 재료로 사용되었다. 색의 농담을 쉽게 표현할 수 있으며, 혼색이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화학 작용으로 변색되는 경우가 있으며, 건조가 느리고, 사용 방법이 복잡하다는 단점이 있다.
가을, 볼만한 #전시회 추천!
▲출처: 헤세와 그림들展 공식 페이스북(左), 키아-환상과 신화展 공식 페이스북(右)
지금까지 명화 속에 숨겨진 화학 이야기를 소개해 드렸는데요. 올가을 놓치기에는 아까운 전시회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답니다. 전시회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는데요, 한번 전시회에 다녀오시면 그 매력에 푹 빠지실 거에요. 그림을 통해 나를 돌아보고, 나만의 방식으로 그림을 감상하다 보면 평범했던 일상이 좀 더 풍요로워지는 걸 느끼실 거에요. 아래 소개해 드리는 전시회 소식을 보시고, 올가을에는 미술관으로 꼭 한번 나들이 떠나보세요.
1. 유럽 현대미술전
프랑스 현대미술을 중심으로 유럽 문화에 대한 작가들의 시선을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전시회입니다. 성남아트센터가 10주년을 맞이해 개최하는 전시로, 다채로운 작품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장소: 성남아트센터 큐브미술관, 기간: 10월 11일까지]
2. 키아, 환상과 신화展
20세기 이탈리아 대표화가이자 신표현주의의 선두주자인 키아의 국내 첫 단독 전시회입니다. 그만의 독특한 색채와 감각을 만나실 기회입니다. [장소: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기간: 10월 4일까지]
3. 헤세와 그림들 展 - 헤세의 가을 ver.
헤르만 헤세의 진품과 함께 그의 작품 세계관을 디지털 기법으로 재해석한 감각적인 디지털 영상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회화 이미지와 영상을 통해 기존 평면적인 전시회를 벗어나 입체감 넘치는 전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장소: 용산 전쟁기념관 기획전시실, 기간: 11월 1일까지]
렘브란트와 반 고흐, 르누아르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 등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천재적인 미술가들이 그린 작품 속에 숨겨졌던 화학 이야기를 들려드렸는데요. 이제부터 미술작품을 보면 원래 다른 색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것 같지 않으신가요? 이제 미술 작품을 감상할 때 또 하나의 즐거움이 생긴 것 같아요. 올가을 미술 전시관에 가시면, 원래 의도하려 했던 색채가 무엇이었을까도 함께 생각하면서 감상해보세요.
<참고자료>
KISTI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이식 박사 컬럼, 눈높이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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